백범김구기념관 - KimKoo Museum & Library
백범김구기념관
김구 생애 및 사상, 백범일지, 연구자료 제공
www.kimkoomuseum.org


백범김구기념관 관람 후기 2편을 올리겠습니다. 임시정부 청사 모형이 눈에 띄었습니다.




충칭으로 임시정부 자리를 옮겼지만 여기도 그렇게 안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충칭 대공습으로 청사가 무너지기도 하는 위기도 맞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청사로 쓴 건물이 호텔이었던 '렌화츠'라는 건물인데 광복 이후 귀국하기까지 머물렀습니다.







대한 독립을 위해서는 국제 외교의 승인이 필수였습니다. 카이로 회담에서 장제스와 루스벨트의 동의로 한국의 독립이 결정되었습니다.









장제스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후원자가 되었고, 훗날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훈장도 받습니다.








한국광복군이 창설되고 훗날 대한민국 국군의 시초가 됩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는 광복군의 진공 작전이 이루어지지 못한 걸 안타까워하셨죠.
















광복 후 임시정부인사들의 귀국은 1945년 11월과 12월에 이루어졌습니다. 김구 선생님은 신탁통치 반대 운동, 중국과 일본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의 유해를 찾아서 효창원에 안장하는데 마음을 쓰셨습니다.












그는 통일정부 수립을 외쳤고, 남북 분단과 남한 단독 선거에도 반대했습니다. 수포로 끝났지만 북한에 가서 김일성과 회담(남북연석회의)을 가졌고요.










김구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과정은 경교장 관람에서 언급했으니 자세히 적지는 않겠습니다. 그의 데스마스크는 경교장에서도 봤었는데 여기도 있네요.










김구 선생님의 흉상은 2층에도 있었습니다.




특별전시실에는 백범의 차남은 김신 선생님의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6.25전쟁에서 그는 공군 조종사로 여러 전공을 세웠습니다. 훗날 공군참모총장 자리까지 오릅니다.






군인뿐 아니라 외교관의 길도 걸었습니다. 중화민국 대사가 되는데, 실제로 장제스와도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이렇게 백범김구기념관 관람을 끝냈습니다. 건물을 나오기 전 방문 기념 스탬프도 찍었습니다. 팜플렛에 찍는 공간이 있는데, 스탬프에 김구 선생님의 안경의 모양과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는 어록도 적혀 있었습니다. 기념관 옆에 이봉창 의사의 동상도 있어서 효창공원을 나오기 전 사진도 찍었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거인의 일대기도 자세히 알아보고, 독립운동의 역사도 다시 숙지하는 뜻 깊은 관람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