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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하며, 새로운 지식과 상상력을 접하길 원하는 1인입니다. 스포츠에 관심이 많으며 주기적으로 헌혈하는 헌혈자이기도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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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청소년게임규제 (1)
[E스포츠] 워크래프트3와 Sky 리샤오펑의 활약으로 본격적으로 발전된 중국의 E스포츠(+중국의 게임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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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차 덕분에 자주 접하게 되는 중국 개최의 스포츠 대회

 

  개인적으로 중국의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연이어 중국에서(하계 항저우 -> 동계 하얼빈) 개최된 아시안게임도 그렇고, 중국에서 열리는 탁구나 배드민턴 대회를 확인합니다. 테니스에서 상하이 마스터즈 대회도 재작년부터 재개되었죠. 중국에서 스포츠 대회가 개최되면 시차가 1시간 차이라 보는데 불편함이 없습니다. 축구를 좋아하지만 유럽 축구 리그의 경우 저녁에 일찍 자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볼 수 있습니다. 평일에는 라이브로 거의 못 보고요.

 

  스포츠 대회 이외에도 여러 종목의 중국 선수들도 관심이 있고요. E스포츠에도 관심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한창 쉴 때는 LPL의 중요한 경기를 조금씩 챙겨봤습니다. 탁구 GOAT 마룽도 리스펙트하지만 E스포츠에도 리스펙트하는 중국 선수들이 몇몇 있고요. 예를 들어 작년에 중국 프로게이머 샤오하이가 EWC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킹오파와 스파 두 격투 게임의 메이저 대회를 정복하는 걸 보고 감탄했습니다. 중국 정부나 역사왜곡은 싫어하지만 중국의 몇몇 스포츠 선수들은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2. 세계 E스포츠의 시작과 중국의 환경

 

  그래서 이번에는 중국 E스포츠의 시작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역사를 검색해서 찾아봤습니다. 우리나라야 스타크래프트 출시와 PC방이 우후죽순 생겼던 과거는 잘 알려져 있고, 서양이야 퀘이크, 카스 등 FPS 시리즈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최초의 비디오 게임 대회는 스태포드 대학교에서 열린 1972년 '스페이스워'라는 게임으로 열린 '은하 우주전쟁 올림픽' 대회고, 일본에서도 1970년대 아케이드 게임 대회가 개최되기도 했죠. 이 부분은 세계 E스포츠의 선사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격적으로 자리잡은 건 1990년대 초부터였습니다. 이 때 격투게임의 근본인 스트리트 파이터 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격투 게임의 올림픽이라고 말할 수 있는 EVO 대회가 1996년부터 시작되었고, 1997년에 CPL이, 1998년에 PGL 개최되며 E스포츠 대회도 단발성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상금 대회도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퀘이크 대회가 CPL과 PGL에 있었고, 스타크래프트도 PGL 시즌 3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록상 우리나라 E스포츠의 시작은 1999년 열렸던 우리나라 최초의 게임리그인 KPGL이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PGL에서 이름을 따왔고요.

 

 

https://pandaily.com/the-evolution-of-chinese-e-sports-industry-policy-and-social-stigma/

 

The Story of Chinese E-Sports: Industry, Policy and Social Stigma - Pandaily

The development of eSports in China makes a case of the ways the government, corporate enterprises, critical public and the eSports community interact, compete and cooperate with each other to facilitate the rise of an industry plagued by public controvers

pandaily.com

 

https://hybrid.co.id/post/gaming-esports-in-china

 

Esports in China: The History, Turning Point Moment, and Future - Hybrid.co.id

China’s love and hate relationship with gaming and esports can be tracked all the way to the ’90s when gaming and esports are not a thing and still considered taboo at times. Today, China as a nation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he realm of esports. I

hybrid.co.id

 

  중국의 경우 워크래프트3가 민속놀이 게임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서 외신 자료 등을 찾아봤습니다.

 

  중국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에 인터넷 카페(PC방) 열풍이 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해외 게임 수입에 제약이 걸렸고 국내 게임 또한 규제가 심했다고 합니다. 2002년 6월 베이징의 '란지수'라는 인터넷 카페에 화재가 발생해서 24명이 죽고 13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불법으로 생긴 PC방이 정리되고 신규 PC방 개설에도 한동안 멈췄다고 합니다. 중국 PC방이 40만 개나 감소했고, 게임 단속이 심해지고 인터넷과 게임을 바라보는 대중적인 인식도 더욱 나빠졌습니다.

 

3. 중국 E스포츠의 시작

 

 

  시간이 흘러 2003년 11월에 중국 국가체육총국은 e스포츠를 99번째 정식 스포츠로 채택했습니다. E스포츠를 정식 스포츠 종목으로 채택한 건 중국이 최초였습니다. 또 2004년에 중국의 전국적인 최초의 게임리그인 CEG(China Espots Games) 대회가 시작되었고, E스포츠가 점점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에 한국 - 중국 교류전 명목으로 WEG 라는 대회가 베이징에서 열렸습니다. 양쪽의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 선수들이 모여서 5:5 단체전을 겨루는 대회였죠. 이 대회에서 임요환 선수가 중국의 장밍루에게 패배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대회 자체는 두 종목 모두 한국 대표팀의 승리였습니다.

 

  2005년 가을도 WEF라는 한국 VS 중국 대회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 4명과 중국 선수들 4명이 토너먼트로 맞붙는 경기인데 이 대회에서도 전 종목(스타크래프트1, 워크래프트3, 카운터 스트라이크) 모두 대한민국이 우승했습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우리나라의 루나틱하이 팀이, 워크래프트는 장재호 선수가, 스타크래프트는 언급하기 싫지만 마재윤이 우승했습니다.

 

4. 중국 E스포츠 역사의 상징, Sky 리샤오펑

 

 

 

  우리나라의 임요환 선수처럼 중국에서 E스포츠를 가장 대중화 시킨 프로게이머는 '스카이(Sky, 리샤오펑)'입니다. 스카이가 WCG 2005와 WCG 2006을 연속으로 제패하면서 중국 E스포츠 팬들이 모두 열광했고, 워크래프트3는 중국에서 국민게임이 되고, 스카이의 팬클럽 수는 천만 명을 돌파했다고 전해집니다. 스카이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중국 내 E스포츠 상금 순위에서 계속 1위였습니다. 스카이 말고도 테드, 인피, TH000 같은 선수들도 워크래프트 레전드고요.

 

  스카이의 WCG 2005 우승은 중국 내에서 기념비 적인 사건인게, WCG 대회에서 중국 프로게이머가 금메달을 딴 최초의 업적입니다. WCG 2001 대회에서 중국팀이 스타크래프트 팀전에서 우승을 했지만, 팀전은 정식 종목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고요.

  5. World Elite(現 WE)가 중국 E스포츠 팀 근본이 되다.

 

 

 

  2005년 한-중 워크래프트 프로게이머들이 모여서 'World Elite'라는 팀이 창단됩니다. 현재 'TEAM WE' 팀의 전신이죠. 리샤오펑이나 천정희 같은 선수들이 소속되었고 워크래프트 게이머들뿐 아니라 피파 온라인, 카운터 스트라이크 등 다른 종목의 프로게이머들도 소속되었습니다. 다만 이 팀에 소속되었던 한국 워크래프트 게이머들은 연봉 등의 문제로 2007년 쯤에 다른 팀으로 나갔습니다.

 

  워크래프트3 E스포츠 판은 해외에 비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인기를 끌지 못했고, 해외에서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크게 쇠퇴합니다. 2008년 총 상금 규모 72만 달러에서 2009년에는 39만 7천 달러로 거의 반토막이 나죠.

 

  다른 대회에서는 WEG 2005 시즌 3 대회(카운터 스트라이크)에서 중국 'wNv Teamwork'라는 팀이 우승했습니다. 세계 대회에서 중국 게이머들이 개인 종목과 팀 종목 모두 성과를 낸 셈이죠.

 

  World Elite는 도타 팀인 EHome과 함께, 2005년에 창단된 유이한 중국 E스포츠 팀입니다. 중국 E스포츠의 근본 팀인 셈이죠.

  6. 중국 게이머들의 다른 종목에서의 활약

 

https://www.guinnessworldrecords.com/world-records/465347-most-esports-tournament-victories-in-doom-3

 

Most eSports tournament victories in DOOM 3

As of 21 February 2017, there had been four DOOM 3 tournaments – in 2004 and 2005 – and China’s Yang “RocketBoy” Meng won two of them, finishing runner-up in another. According to e-Sportsearnings, the bulk of his winnings came from his win at th

www.guinnessworldrecords.com

 

 

  그 외에 둠 3나 퀘이크 등 FPS 종목의 'RocketBoy'라는 중국 선수가 2004년 E스포츠 상금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 위대한 페이탈리티를 꺾고 12만 달러를 획득했는데 이는 둠 시리즈 E스포츠에서 가장 많은 상금을 획득한 기록이라고 합니다. 기네스 세계기록에도 등재되었습니다.

 

  CPL 퀘이크 대회나 도타2 TI에서 중국 선수들이나 팀들이 우승을 기록한 것도 무시할 수 없고요. 기성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14억 인구에서 다양한 종목에 인재가 나옵니다.

 

  그 외에 'NEST'라는 중국 전국 단위의 E스포츠 대회가 2013년부터 매년 개최되기 시작했고, 2010년대 LOL의 폭발적인 인기로 LPL 리그가 열렸습니다. 2017년까지 한국 LCK의 독주였다가 그 이후 IG와 FPX 등의 월즈 우승으로 LCK 독주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최근에는 EDG 발로란트 팀이 챔피언스 대회에서 우승하는 업적을 세웠죠.

 

  7. 게임 규제로 유망주 양성에 암초가 걸린 중국 E스포츠.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시행된 중국의 미성년자 게임 규제로 중국 E스포츠 유망주들에게 악재가 닥쳤습니다. 18세 미만은 평일에 1시간, 주말과 공휴일에 3시간만 게임을 할 수 있고 정해진 시간에만 게임을 해야 합니다. 유스풀이 산산조각났고 LPL 팀들은 2부리그(LDL) 운영을 포기했고요.

 

  비슷한 사례로 우리나라도 셧다운제를 10년 가까이 시행했지만 중국은 그 정도가 매우 지나칩니다. 내년 아시안게임에서 중국 선수들이 E스포츠 종목을 싹쓸이해도 게임 규제 기조는 변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런 걸 보면 중국 유망주들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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