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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공식적인 세계최강으로 등극한 이후 2001년 6월까지 2년 6개월동안 세계 최정상의 자리에 있었던 플레이어.
전설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칼리와 오리지널 시대부터 시작하여 브루드 워, 그리고 프로게이머 시대에 이르기까지 유일하게 각 시대별 최강자로 등극하였고 또한 아마추어. 베틀넷, 오프라인 프로게이머 리그까지 유일하게 최강자의 자리에 올라선 사나이.
그렇다. 바로 '세계 최강'이라는 닉네임을 가졌고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못하던 프로게이머. '기욤 패트리'가 이번 글의 주인공이다.
기욤 패트리의 커리어에 있어 단연 빛나는 부분은 '블리자드 월드 챔피언쉽' 우승이다. 이 대회는 기존에 열렸던 '블리자드 레더 토너먼트'와도 비교를 거부하며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온게임넷 대회건 MBC MSL 등 어떠한 대회도 대적할 수 없는 최고의 대회다.
쉽게 말해 이 대회는 레더 토너먼트에서 온갖 말이 오고 가자 블리자드가 작정하고 '그래! 어디 한번 공인 세계 최강을 공식으로 가려보자!' 취지로 블리자드가 내건 최후의 스타 크래프트 대회였다.
'기욤 패트리'는 이 대회에서는 순항을 거듭하고 결승에서 '김창선' (현 온게임넷 해설자) 에게 3:0이라는 일방적인 스코어로 1시간여 만에 우승 확정지으면서 블리자드가 인증한 공인 세계 최강 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PGL. 일치감치 프로게이머라는 것을 탄생시킨 북미에서는 협회까지 있었는데 여기서 주관한 북미 프로게이머 대회. 즉 지금으로 치면 온게임넷 스타리그 혹은 MSL 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서 기욤 패트리는 우승하면서 아메리카 대륙 제패.
그리고 유럽의 최정상의 플레이어들이 참가했었고 역시 전 세계의 상위랭커들이 모조리 참가한 '유럽 오픈' 우승으로 유럽 대륙 제패.
그리고 역시전 세계 상위랭커들을 초청하여 벌인 세계대전 l2e2 세계 대회 우승.
그리고 한국에 와서 이룬 하나로 통신배 스타리그 우승으로 한국 제패.
딱 여기서 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가? 바로 '세계 정복' 혹은 세계 제패. 그렇다. 최초의 그랜드 슬래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당시 전 세계적으로 스타 크래프트가 인기를 끌고있던 그 시절. 각 대륙을 접수한 것이다. 이런 큰 대회 말고도 99년 당시 기욤 패트리는 전 세계 각지의 대회를 모조리 쓸어담으면서 최악의 상금 사냥꾼으로 악명을 떨친바가 있다.
2000년 초에 열린 <하나로 통신배 스타리그>. 공식적으로 기욤패트리가 참여한 첫 대회다. 기욤 패트리가 한국에 오게 된 사정은 레더 토너먼트의 종료. 그리고 북미 프로게임리그 PGL의 종료 등 세계각지에서 스타 크래프트의 인기가 식어간 탓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최고의 인기를 끌고있다는 소식을 듣고 짐을 싸들고 한국에 정착할 목적으로 강림을 하였던 것이다. 자 여기서부터 베일에 쌓여있던 '기욤 패트리'의 플레이가 공개되기 시작하였는데 엄재경 해설위원이 평가하는대로 하나의 컬쳐쇼크 수준이었다고 말 할수 있었다.
당시 한국 프로게이머들의 플레이는 전형적인 빌드싸움. 교과서적인 플레이. 틀에 박혀있는 모습등으로 평가하는데 (이기석 선수가 초창기에 전술의 기초를 보여주긴 했었다.) 기욤 패트리는 현재의 스타 크래프트처럼 실시간으로 변하는 플레이. 심리전. 전략, 전술, 그리고 컨트롤 부분에서 지금의 스타 크래프트 경기체제를 보여주면서 순식간에 한국을 장악하였다.
즉 당시 기욤의 플레이는 신 문명의 혜택을 받지못한 한국 유저들에게 신 문물을 전도하는듯한 모습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혁명을 일으켰다. 쉽게 말해 스타 크래프트는 고정된 게임이 아니라 언제든지 변 할 수 있고 전술과 지형에 활용에 따라 판도가 달라지는 전략 게임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가르쳐준 모습이라고 할까?
그렇기에 현재 전략가의 계보를 따질 때 '기욤 패트리'가 최초의 전략, 전술가로 지칭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당시같은 시대의 프로게이머이자 전 KTF 매직엔스의 코치였던 박현준님의 언급을 보면 더욱 쉽게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박현준의 언급 -
다른건 몰라도 기욤선수는 정말 대단했죠. 그 어느시대의 최고의 게이머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보여줬었습니다. 지금 프로게이머 랭킹 1위와 2위는 비슷한 실력이라고 보면 되지만 그 당시 기욤과 열판해서 두세판 이길 선수는 없었습니다. 그 당시 나름대로 그 누구보다 잘한다고 생각했던 저도, 기욤에게 대부분의 스킬을 배웠습니다.
당시 분명히 세계적인 한축을 담당했던 한국 프로게이머들이 결국 '기욤 패트리'의 벽을 넘지 못한 이유가 있었던것이다. 그렇기에 숱한 경쟁자들을 따돌리며 '세계 최강'으로 올라섰던것이다. 당시 국내 프로게이머와의 역량은 정말 너무도 크게 차이가 났던 것이다.
하지만 천부적인 센스와 천재적인 감각.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기욤 패트리에게도 몰락은 찾아왔다. 여타 이유보다 당시 기욤 패트리의 시대를 경험한 유저였다면 공감할 이유. 바로 '극도의 게으름' 덕분이다. 당시 모든 부분에서 최고의 역량을 보여준 기욤 패트리 였지만 연습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게으른 천재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하루 연습 시간이 많아야 1~2시간에 불과하며 결승전같이 중요한 날에도 연습은 커녕 나이트에서 놀다가 와서 하는 등 극도의 게으름이 뭔지 잘 보여주는 일화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본인 스스로 자초했다고 할까? 물론 이 같은 게으름을 보인 이유도 있다. 역시 당시 프로게이머였던 박현준님의 언급을 한번 들어보자.
박현준의 언급 -
기욤이 한국에 와서 보여준 모습들 대부분의 경기들은 거의 준비가 되지 않은것들이었습니다. 한국 생활에 재미를 느끼면서, 2년여를 거의 연습하지 않았죠. 한국게이머들이 기욤을 따라 잡은것은 기욤이 스타에 손을 놓은 약 1~2년 후입니다.
자 여기서 알 수 있는것. 실질적으로 기욤 패트리는 스타를 하긴 했지만 진지하게 생각한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재능은 너무나 아쉬웠지 않는가? 박현준님의 언급에서조차 한국게이머들이 기욤을 따라잡았던 것은 스타크래프트를 사실상 거의 그만두다시피한 시기부터였다고 한다. 기욤 패트리 역시 2년전쯤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그때는 스타 크래프트가 이토록 오래가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오래 갈 줄 알았다면 열심히 했었을것이다.
기욤 패트리의 인터뷰 내용 中
하지만 여기서 필자는 아무리 이유가 그렇다고 하더라고 이런 부분에서는 옹호해줄 생각은 없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프로의 세계에서 치열한 승부근성이 반드시 필요하고 노력 역시 반드시 따라와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스스로 자초한것은 기욤 패트리의 명백한 잘못이다. 그리고 2001년 6월 대망의 LAST 1.07이 열린다.
이 대회는 온게임넷 역사상 유일하게 유료 입장을 받았으며 동시에 슈퍼 파이트 형식으로 연 최초이자 마지막 매치였다. 매치는 기욤 패트리 VS 임요환. 이 대회가 있기 전에 한빛 소프트배 스타리그에서 초 대박 결승 매치로 기대되었던 기욤 VS 임요환의 매치가 기욤의 4강 탈락으로 좌절되자 마련한 매치였다.
이 대회에서 임요환은 기욤패트리에게 3:0의 압승을 거두면서 공식적으로 자신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린다. 이렇게 LAST 1.07을 끝으로 2년 6개월간의 기욤패트리의 시대는 마무리되었으며 임요환이 또 다른 전설의 행보를 시작한다.
하지만 처참하게 기욤 패트리의 왕조는 그렇게 끝이 났지만 당시에 세계를 석권한 유일한 프로게이머였고 아마추어, 오프라인, 배틀넷, 프로게이머 시대에 이르기까지 유일하게 최강자를 증명하였고 세계 최강이라는 타이틀 달 수 있는 유일한 프로게이머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값어치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프로게이머의 수준을 확실하게 올려둔 공로는 정말 무시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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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전성기 스타크래프트1 게이머였던 기욤 패트리에 대한 글입니다.
스타1은 1998년 발매되어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게임입니다. 2001년에도 인기가 있었지만 그 전보다는 못했고, 그 이후부터는 거의 한국에서만 한정된 인기였지만 국민게임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하나의 문화였습니다. 다만 2007년부터는 스타 자체의 인기도 줄고 2011년에 팀들이 해체되고 리그도 축소되면서 2012년에 프로 E스포츠로서는 문을 닫게 되죠. 물론 이후에도 아프리카tv에서 ASL이 계속 열리고 있지만 공식 리그로 쳐주지는 않습니다. 엄연히 롤이 현재 최고 인기 게임이고요.
하지만 스타1은 게임방송이 스폰서가 붙고 돈이 된다는 점을 보여준 게임 중 하나입니다. 프로게이머 상금 자료 홈페이지인 ' https://www.esportsearnings.com/ ' 를 통해 상금 기준으로 스타1과 퀘이크라는 FPS 게임이 초창기 E스포츠 시장에 최고점을 기록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흔히 임요환을 스타1 초대 강자로 알고 있지만 기욤 패트리라는 이전 최강자가 있었습니다. 스타1이 전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었을 때 최강으로 군림했고, 임요환이 그를 꺾으면서 최강자로 등극하게 되었죠. 임요환의 상징성과 해외 평가가 높은 게 스타1의 제패를 한국으로 가져오면서 E스포츠 최강국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는 점일 것입니다. 이는 페이커와 SKK 멤버들(임팩트, 벵기, 피글렛, 푸만두)가 시즌3 롤드컵에서 우승하면서 한국 롤의 시대를 열은 것과 비슷하죠.
임요환도 양대리그 체제가 늦게 갖춰져서 손해를 본 경우지만 기욤은 그보다도 더할 것입니다. 임요환은 그래도 양대리그 기준 3번 우승을 경험했지만 기욤은 전성기 끝자락에 생긴 스타리그 우승 1회만 공식 우승만 인정받고 있죠. 심지어 기욤은 E스포츠 명예의 전당 홈페이지에 등록되어있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기욤의 커리어는 절대 무시받을 수 있는 레벨이 아닙니다.
리퀴피디아에서는 북미 게임 대회였던 1998년의 PGL 시즌3를 최초의 스타크래프트1 대회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 래더 토너먼트도 있지만 어뷰징 논란이 심각하고 상금 규모도 현격한 차이가 있어서 개인적으로 인정해주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회에서 기욤은 시즌3 3위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1999년 기욤은 PGL 시즌4 우승 등으로 본격적으로 최강자의 길을 걷습니다. 그 해 상금 1위를 기록하죠. 당시 스타1판이 상금 헌터 식으로 진행되었기에 더더욱 가치가 높습니다.
위에서 보면 1999년 E스포츠 대회가 나열되어 있는데 CPL이나 Desecent 대회는 스타1이 다른 게임 대회고, KBK 마스터즈는 당시 한국 게이머들만 참여했었던 대회로 추정되고, 래더 토너먼트는 어뷰징 논란이 심했습니다. 나머지 대회들 중 기욤은 PGL 시즌 4 우승, 스포츠 서울 컵 준우승, 블리자드 월드 챔피언십 우승, l2e2 인비테이셔널 대회 우승을 기록했습니다. 스타리그 전신 대회인 99 PKO 대회에는 참여하지 않았고요. 그야말로 출전한 대회에 대부분 우승, 적어도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더군다나 기욤은 유럽 파리 오픈 대회에서도 우승했다고 알려져있는데 저 사이트에는 누락되어 있어서 미처 기록되지 않은 커리어도 꽤 될 것입니다.
다음 해 그는 하나로통신배 스타리그에서 강도경을 누르고 우승을 기록했습니다. 프리첼배 스타리그에서는 8강에서 떨어졌지만 스타리그 왕중왕전에서도 국기봉을 이기면서 우승했습니다. 그러나 WCG 2000에서는 조기에 탈락하고, 다음해 스타리그에는 장진남에게 4강에서 떨어져서 3위를 기록했습니다. 2002년에도 겜tv 대회 준우승, 2003년 WCG에 3위를 기록하지만 그는 임요환에게 패권을 넘겨준 다음부터 최강자의 자리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명백히 최강자 위치에 있었음은 물론, 당시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4차례나 거머쥐었습니다. 잡대회를 빼더라도 PGL 시즌 4 우승, 스포츠 서울 컵 준우승, 블리자드 월드 챔피언십 우승, l2e2 인비테이셔널 대회 우승, 하나로통신배 스타리그 우승은 분명히 수십 명의 내로라하는 게이머들이 경쟁했었고 높은 상금이 걸린 대회에서 기록한 커리어였습니다. 여기에 홍진호가 인정 못 받아서 지나치게 평가 절하되는 스타리그 왕중왕전 우승과 포디움 커리어인 PGL 시즌 3 3위, 한빛소프트배 스타리그 3위도 있습니다. 당시 기록이 남지 않았던 대회도 있을 거라는 점까지 감안한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커리어 보유자입니다. 물론 임이최나 후대의 이제동, 이영호에 비하면 부족하겠지만 그 이외의 선수들과 비교해볼만은 합니다. 단순 1회 우승자들과는 확실히 격이 다르고요. 사견으로는 역대 스타1 게이머 중 양대리그 3회 우승자 라인인 김택용과 박성준 다음 가는 선수였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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