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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아트 슈피겔만의 <쥐: 한 생존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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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가 아트 슈피겔만이 그린 <쥐: 한 생존자의 이야기>(이하 <쥐>)는 1992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만화책입니다. 아트 슈피겔만은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에게서 들은 2차 대전 전후 이야기, 그 중에서도 홀로코스트 이야기를 직접 듣고 만화로 그립니다. 총 2권으로 되어 있는데 1권은 블라덱과 그의 아내 아냐 슈피겔만이 나치로부터 피해서 방랑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2권도 블라덱이 아우슈비츠로 끌려가서 겪은 경험담이 대부분입니다.

 

  블라덱은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으로, 가족 모두가 유대인입니다. 젊었을 때 아냐와 결혼해서 아들을 낳고 가정을 이루었는데 아냐와 그녀의 가족들도 모두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듯 했지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폴란드는 나치에 점령되었습니다. 나치는 유대인들의 재산을 계속해서 강탈하고 게토라는 유대인 수용소를 만들어서 삶의 터전을 빼앗았습니다. 유대인들을 한꺼번에 아우슈비츠로 보낼 수는 없어도 치졸한 이유를 들어 꾸준히 말살시킵니다. 문서가 없다는 이유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그냥 폭력을 동원해서 무고한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냈죠. 그나마 아냐의 가문이 백만장자라 나치의 횡포에도 다른 유대인들에 비해서 좋은 환경에서 살았지만, 나치는 단 한 명의 유대인까지 학살할 작정이었습니다.

 

  1권 중반부에는 폴란드에 살던 블라덱 쪽 가족들은 모두 끌려가서 세상을 떠났고, 아냐 쪽 가족들은 그들보다 늦게 끌려갔지만 나치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오직 블라덱과 아냐만 좀 더 오래 방랑했죠. 블라덱은 벙커라는 대피소를 만들어 나치의 눈을 피해다녔지만 1권 막바지에 게슈타포(나치 비밀 경찰)에게 잡혔습니다. 블라덱은 폴란드인에게 많은 돈을 주는 대신 그들의 집에 은신하는 거래를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블라덱은 언제 붙잡힐 지 모르는 불안감과, 돈이 다 떨어질 것을 걱정했고 밀수꾼들을 통해 헝가리로 갈 계획을 실행했습니다. 하지만 밀수꾼들은 동시에 사기꾼들이었고 블라덱과 아냐를 신고해서 게슈타포에게 잡히게 만들었습니다.

 

  2권에 블라덱은 아우슈비츠에서 온갖 고초를 당합니다. 다만 유태어 이외에도 영어와 폴란드어에 능숙했고 제화공 일도 안목이 있던 그는 지옥에서도 최대한의 음식을 구했습니다. 자신을 담당하던 카포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대신 그에게 음식을 받았고, 제화공 노동자로 좀 더 나은 대우를 받습니다. 그러나 아우슈비츠에서 주는 음식은 아주 조금인데다 최악의 음식(밀가루에 톱밥을 반 섞어서 만든 빵)만 받아서 간신히 생명을 유지했습니다. 같이 끌려온 만델바움이라는 친구도 가스실로 끌려갔죠. 다행히 2차 대전 전세는 나치의 패배가 확정적이라 아우슈비츠에도 소련군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블라덱은 대부분의 수용자들과 함께 독일로 끌려가서 또다시 수많은 고생을 겪었습니다. 다행히 미군을 만나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났고, 생존한 아내 아냐를 만나서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인 '쥐'는 만화에서 유대인을 동물인 쥐로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독일인은 고양이, 폴란드인은 돼지, 미국인은 강아지, 프랑스인은 개구리, 스웨덴인은 순록으로 그려냅니다. 물론 사람의 형상에 머리 부분만 동물로 그렸죠.

 

  작가 아트 슈피겔만은 블라덱과 아냐의 둘째 아들입니다. 첫째 아들인 리슈 슈피겔만은 아냐의 언니 토샤와 로냐, 비비라는 사촌들과 같이 독약으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죠. 가스실에는 가지 않겠다는 토샤의 결단으로 어린 나이에 죽은 것입니다.

 

  이 작품은 아트가 직접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녹음하고 기록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이 책은 단순히 홀로코스트의 끔찍함만 있지 않습니다. 아트와 블라덱의 세대갈등도 있었죠. 블라덱은 끔찍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느라 아무 것도 버리지 못하는 자린고비가 되었고 아트와 그의 아내 프랑소와즈는 이를 답답해 합니다.아냐는 아트가 스무 살이 되던 1968년 자살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신경질과 강박증이 심하던 남편 블라덱과 직업과 연애 문제로 부모와 갈등이 심하던 아들 아트와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동맥을 끊음으로써 죽었죠. 특히 아냐는 원래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고, 아우슈비츠에서의 악몽이 겹친 데다가, 2차 대전이 터질 당시 미국에 살아서 생존했던 오빠 헤르만이 사고로 죽은 것도 그녀를 힘들게 했습니다.

 

  아냐의 죽음이 안타까운 건 이 책이 오로지 블라덱 한 사람의 말로 말미암아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블라덱 한 사람의 기억에서 나오는 내용이라 온전히 신뢰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아냐에게서도 이야기를 들었으면 내용이 더욱 풍부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의 자살 이후 블라덱과 아트는 피눈물을 흘렸고, 아트는 자신은 평생 감옥 속 죄인으로 지내야 한다는 심경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충격을 견디지 못해 아냐의 일기를 불태운 아버지에게 폭언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블라덱과 아냐는 리슈가 죽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믿지 못했습니다. 미국에 정착한 후에도 유럽으로 15번도 넘게 와서 전 유럽의 고아원을 다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차마 맏아들을 잊지 못했는지 아트의 방에 리슈의 사진을 떡하니 걸어놓기도 했죠. 2권 후반부에서 아냐가 집시족 예언가가 당신은 작은 아이를 잃었다고 말하자 크게 슬퍼하는 부분이 나왔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블라덱도 잠에 들면서 아트를 향해 리슈라고 부르기도 했죠.

 

  책을 읽으며 전체적으로 슬프고 울적했습니다. 거의 모든 가족들을 잃은 블라덱 아냐 부부의 슬픔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가족 간의 갈등, 아냐의 자살이라는 홀로코스트 이후의 또다른 비극이 닥쳤기 때문입니다. 아우슈비츠의 끔찍함은 어떤 단어로도 감히 표현할 수 없습니다. 가스실과 시체, 죽어가는 유대인들, 나치의 폭력, 심지어 나중에는 불구덩이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는 헝가리의 유대인들까지. 2차 대전은 총과 칼은 기본이었고 힘이 없는 게 죄가 되었고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이었습니다.

 

  블라덱의 말 중 두 문장을 아직도 읊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방 안에다 먹을 것도 없이 일주일만 가둬놓으면 그 땐 친구란 게 뭔지 알게 될 거다."이고 다른 하나는 "넌 배고픈 게 뭔지 모를 거야."입니다. 가족들이 곁에 있고, 굶으면서 살지 않는 게 큰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의 키워드는 '생존'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블라덱은 전쟁에 참전해서 포로가 되고, 나치 병사들에게 잡혀서 죽을 뻔하고, 그들의 감시를 피해 숨고, 게슈타포에게 매를 맞고, 아우슈비츠의 가스실 선별을 수없이 겪고, 전쟁 이후 모든 것을 잃고 장사로 다시 돈을 벌었던 것도 모두 생존에 위기가 드리운 기억이었을 것입니다. 전쟁에 참전했던 것만 빼면 아냐도 마찬가지입니다.

 

  홀로코스트가 최악의 범죄지만 21세기에도 이와 비슷하거나 크게 낫지 않는 일들은 비일비재합니다. 소수 민족에 대한 탄압, 비인간적인 수용소, 이어지는 전쟁 범죄, 그 밖의 헤아릴 수 없는 부조리한 일들은 힘이나 권력이 없는 사람들의 인생을 망가트리죠. 가난이 죄가 아니라고 해도, 힘이 없는 게 죄가 아니라고 해도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는 건 슬프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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