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롤(리그 오브 레전드)이 파급력, 흥행 등에서 한국 e스포츠의 모든 것이 되었지만, 2000년대 한국 e스포츠의 중심은 스타크래프트1(이하 스타1)이었다. 1998년 발매된 이 게임은 문화가 되었고, 젊은 남성층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접했다. PC방과 인터넷의 보급도 스타1의 흥행에 도움이 되었고, '배틀넷'이라는 혁명적인 온라인 대전 시스템이 결정적이었다. 사람들은 배틀넷 상에서 누가 스타1을 잘하는지 겨루기 시작했고, 스타1은 10년이 넘게 흥행을 이어갔다.
KBS에서 만든 이 다큐멘터리는 과거 스타1 현상을 담았다. PC방이 증가하고 컴퓨터와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게임은 일약 문화가 되었다. 이는 스타1 신드롬의 시작점이었다. 임요환-홍진호-이윤열-박정석으로 굳어진 4대천왕과, 광안리에서 펼쳐진 프로리그 결승, 스타1의 대표적인 메이저대회였던 스타리그의 영상들을 잠시나마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어두운 이면이라고 할 수 있는 게임 중독 현상, 게임을 나쁘게 보는 사회 시선, 그리고 승부조작 사건까지 다시 볼 수 있었다. 옛 스타1 관련 인물들 중에는 4대천왕 이외에도 전용준 캐스터와 엄재경 해설, 주훈 감독, 송병구와 허영무와 정명훈 같은 프로게이머들, 지금 롤 팀을 맡고 있는 최연성 감독까지 추억의 인물들이었다.
프로토스, 테란, 저그 이 세 종족 중 하나를 선택하고, 머릿속에 어떤 건물과 유닛을 전개할 까의 빌드를 미리 그려내고, 미네랄과 가스를 캐면서 물량을 모으고, 초중후반 필요하다면 견제를 가거나 승부수를 띄우고, 15분 쯤 넘어가면 한 타 싸움에서 컨트롤과 마법 활용으로 싸우는 게임. 어린 시절 필자도 스타1을 많이 했고 프로게이머들 경기를 수백 차례 시청했다.
하지만 음지에는 게이머들의 많은 희생과 노력이 있었다. 최대한 스폰서를 유지하려던 임요환은 말할 것도 없고, 홍진호 역시 임요환과 (비공식적인 일이었고 실패로 귀결됐지만) 선수협회를 만들려고 했었고, 이윤열과 박정석 역시 각종 방송에서 e스포츠를 알렸었다. 초창기에는 거의 모든 게이머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했으며, 연습생은 1년에 몇백만원 밖에 못 버는 사례도 있었고 아예 무급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스타1 승부조작에 가담한 몇몇 게이머들은 생계 문제로 조작을 했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승부조작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고, 방송에서 나왔던 마모씨와 원모씨처럼 승부조작 사건에서 브로커 노릇을 한 인간들은 그저 돈에 눈이 먼 역적들이었지만.
2000년까지는 세계적으로도 스타1이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인기가 있었지만 2010년 이후 지적 재산권 분쟁, 승부조작 사건, MBC게임 폐지로 양대 개인리그 메이저 대회였던 'MSL'이 사라지고 스타1은 몰락했다. 지금 아프리카tv에서 스타1 대회를 개최하고 있지만 예전에 비하면 그 규모가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롤의 등장으로 예전 스타1보다 e스포츠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학교에서도 e스포츠 동아리가 만들어지고 학원이 우후죽순 생겼으며, 페이커(이상혁)처럼 몇 십억 연봉을 받은 프로게이머도 등장했다. 아시안 게임에서 몇몇 게임이 당당한 e스포츠 종목으로 인정받기까지 했다. 지금도 많은 기성세대들이 게임에 대한 선입견이 많지만, 적어도 20년전 보다는 '게임 폐인', '인생의 낭비'라는 말이 덜 나오게 되었다. 프로게이머는 하나의 직업이 되었으며 e스포츠 시장과 시설은 과거 스타1 만큼 부실하거나 열악하지 않다. 더욱 성공한 e스포츠 판의 미래는 밝다고 볼 수 있다.
임요환, 홍진호, 이윤열, 박정석, 조용호, 강민, 최연성, 박성준, 김택용, 송병구, 이제동, 허영무, 정명훈, 이영호 등 예전 스타1 게이머들은 한국 e스포츠의 레전드로 기록될 것이고, 지금은 롤의 시대가 된 지 오래이다. 롤판은 더 오랫동안 갈 것이고 필자도 그랬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스타1에 더 큰 애착이 가서 지금도 스타1의 암적인 부분(열악한 환경 등)이 씁쓸했고, 스타1의 패치나 새로운 패러다임이 더 활성화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도 아쉬웠다. <더 게이머>라는 다큐를 다시 보니 그 때가 다소 그립기도 하면서도, 추억을 되새겨서 옛날로 잠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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