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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하며, 새로운 지식과 상상력을 접하길 원하는 1인입니다. 스포츠에 관심이 많으며 주기적으로 헌혈하는 헌혈자이기도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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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중구박물관 (3)
서울특별시 중구 재일한국인기념관 관람 후기입니다.(한국금융사박물관 5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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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lhkef.or.kr/kr/museum_sub01.do

 

이희건 한일교류재단

basic information of the foundation 재일한국인기념관은 광복 이후에도 일본에 머무르게 된 한국인들의 역사와 그들의 문화를 보여주며, 조국 발전에 공헌한 동포들의 모국 사랑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lhkef.or.kr

 

  10월에 한국금융사박물관 관람 후기 포스팅을 모두 올렸습니다. 같은 건물(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35-5, 신한은행 광화문지점)에 재일한국인기념관도 있었는데 한국금융사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재일한국인기념관은 2022년 7월 개관한 박물관으로 신한은행 측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신한은행을 창립한 재일교포 기업가 이희건 명예회장을 기리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희건 회장을 비롯해서 재일교포의 역사를 소개하고, 일본에 거주하거나 한국과 일본을 오고 가면서 우리나라를 돕고자 했던 한국인들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구한말 나라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농민 등 수많은 조선 사람들이 해외로 이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주나 하와이 등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죠. 이를 '코리안 디아스포라'라고 부릅니다. 현재 재외동포가 750만명에 달할 정도로 우리나라 이민의 역사와 규모가 거대합니다.

  광복 이후 많은 한국인들이 한반도로 귀국했지만, 당시 나라의 혼란과 일본의 반출 자금 규제, 수하물 제한 등으로 일본에 터를 잡고 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642명의 재일학도의용군이 참전해서 135명의 용사들이 전사하거나 실종되는 비극을 겪기도 했습니다.

  재일 동포들은 일본에서 학교를 설립하고 파칭코 등 일본 문화에 적응하려고 애썼습니다.

  해방 후 일본 정부는 그들의 강제추방을 꾀했고, 생활권을 보장하지 않고 국적을 부여하지 않는 등 온갖 차별로 괴롭혔습니다. 한글을 가르치는 민족학교 설립도 막았죠.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재일한상 설립'으로 금융업에 진출하면서 경제적 자립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재일동포 기업가들은 구로공단을 시작점으로 마산수출자유지역, 안산반월공단 등으로 진출하는 등 당시 우리나라 경제개발 계획에도 자신들의 자본과 기술을 투입했습니다.

  신한은행에서 관리하는 건물 답게 신한은행과 이희건 회장의 일대기도 다루고 있습니다. 전두환 정권 때 이희건 회장과 수백 명의 재일동포들은 정권의 허가를 받고 광복 이후 최초의 민간 자본은행인 신한은행을 설립했습니다.

  1982년 서울 올림픽 개최가 확정되자 재일동포들은 '재일한국인후원회'를 결성했습니다. 이희건 회장이 앞장섰고 그들은 7년 동안 총 100억엔이라는 거액을 내놓았습니다. 이 돈은 올림픽에 필요한 경기장을 짓는데 사용되었고, 이를 기억하기 위해 올림픽공원에 성금기념비가 건립되기도 했습니다. 이희건 회장은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습니다.

  매년 11월에 오사카에는 '사천왕사 왔소' 축제가 열립니다. 삼국시대 사신부터 조선시대 통신사까지 일본과 문화교류했던 역사를 재현하고, 일본 내 재일동포 사회의 상생발전을 지향하는 축제이기도 합니다.

  재일동포들은 광복 이후 자신들의 사정 또한 녹록치 않은 데도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스포츠 용품을 지원하고, 일본에서 개최된 1964년 도쿄 올림픽 때도 모금으로 말미암아 한국 선수단에 1억 5천만엔을 지원했습니다. 1970년 최초로 동아시아에 개최된 등록박람회인 오사카 엑스포 때도 한국관 건립 비용으로 2억 4천만엔을 후원했고 9,710명의 한국 사람들을 무료로 관람시켜주기까지 했습니다.

  IMF 경제위기 때도 재일동포들은 15억 달러(781억 엔)라는 거액을 한국에 송금했습니다. 이는 금모으기 운동에 모은 금 가치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천문학적인 돈입니다.

  이희건 회장이 신한은행 직원들에게 전하는 '오십훈' 내용과 '재일한국인본국투자협회'의 역사도 나타나 있습니다.

  이렇게 재일한국인기념관 관람을 끝냈습니다. 재일동포들을 비롯한 재외동포들과 우리나라의 교류가 앞으로도 영원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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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중구 한국금융사박물관 관람 후기입니다.(2편 - 4층 금융생활체험관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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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의 CSR 관련 사회공헌활동 소개 및 프로그램 운영 종합 포탈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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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금융사박물관 3층 관람을 끝나고 다시 입출구 쪽 계단을 올라가서 4층으로 올라갔습니다. 3층은 금융의 역사에 조명을 맞췄다면 4층은 현대 금융의 역사와 은행을 중심으로 조성되었습니다.

  금융실명제 도입, IMF 외환 위기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에서 우리나라 금융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신용카드나 체크카드, 인터넷뱅킹이 없던 아날로그 시절에는 진짜 얼마나 번거로웠을까요. 슈퍼마켓에 가려면 지폐나 동전을 무조건 갖고가야 하고, 소액이라도 입금하려면 은행에 무조건 가야 하니까요. 모바일뱅킹 시대에 어플로 '딸깍'하면 송금이나 결제를 할 수 있고, 온라인 상으로 계좌도 생성할 수 있어서 웬만한 건 전부 집에서 은행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과연 미래에는 얼마나 더욱 간편해질까요?

  옛날 은행 창구가 박물관에 재현되어 있습니다. 실제 사람이 있지는 않고 영상에서 은행원 안내 영상이 반복적으로 재생되어 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부모님께서 시키는 대로 은행 계좌 만들고, 몇 천원 정도 수없이 입금했던 게 떠올랐습니다. 청소년이 되면 교복 사야하는 만큼 미리미리 저축하는 습관이 있었죠.

  생각해보면 종이통장도 점점 사라지는 추세가 아닐까 합니다. 개인적으로 거래내역 보려고 ATM기에서 통장정리한 적이 가장 최근으로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네요. 카드를 쓰면 사용내역이 바로 문자로 오고 은행 어플을 클릭하면 소비 내역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필자가 봤던 은행 번호표는 명함 크기의 하얀색 종이에 검은색 글씨로 '대기번호 00XX'가 전부였는데 앞에 대기자가 10명 이상 있어서 번호표가 밀리면 가까운 마트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다시 오기도 했었던 추억을 되새겼습니다.

 

  옛날에는 통장정리용 자동화기기, 현금인출용 자동화기기로 분류되었던 모양입니다. 현재 ATM기는 한 기계에서 저 두 가지 이외에도 다른 은행 계좌에 송금하는 등 많은 기능을 사용할 수 있죠.

  대여금고 공간도 들어가 봤습니다. 부자들이 보석이나 수표, 아주 중요한 계약서 등을 넣는 공간이죠. 은행 측에서는 안전하게 보관해주고 비밀을 보장해주는 대가로 매월 상당한 돈을 받죠.

  '함께 만드는 금융 히스토리' 공간에는 관람객이 원하는 그림을 선택하고 개인 얼굴과 함께 찍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필자도 하나 찍어서 개인 메일로 보내둔 다음 소장했습니다.

  세계 각국의 화폐도 붙여져 있었습니다. 유로화, 영국 파운드, 일본 엔, 중국 위안화 등 다채롭게 보입니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에도 많은 화폐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나름 겹쳐보이기도 했습니다.

  화폐의 역사를 다룬 공간도 보였는데 어린이 교육용에 맞춘 설명과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보이는 수장고에서는 은행과 관련된 책자, 은행, 신문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습니다.

 

   창문을 통해 서울 도심 거리가 보입니다.

 

  이렇게 한국금융사박물관 관람을 마무리했습니다. 다음에는 이 박물관 윗층에 있는 재일한국인기념관 관람 사진을 정리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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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중구 한국금융사박물관 관람 후기입니다.(1편 - 3층 한국금융역사관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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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주 박물관 관람 후기를 쭉 올리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한국금융사박물관으로 서울특별시 중구에 위치한 박물관입니다. 신한은행 광화문지점 건물에 있는 박물관으로 정확한 주소는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35-5 한국금융사박물관'입니다. 이 건물 3층 ~ 4층에 한국금융사박물관이 있고 5층에는 재일한국인기념관이 있습니다.

  지하철로는 5호선 광화문역 6번 출구 방향, 혹은 1호선 시청역 3번 출구 방향으로 오시면 됩니다. 청계광장교차로 부근에 있는데 필자는 처음 방문하는거라 몇 분 애먹었습니다.

  건물 엘리베이터를 통해 3층으로 왔습니다. 5층 재일한국인기념관부터 갈까 생각했는데 3층에 시작해서 올라가는 걸로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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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금융사박물관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박물관입니다. 다만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에 휴관입니다. 1997년 개관했을 당시에는 조흥금융박물관이었지만, 개관한 지 10년이 지난 2007년에 오늘날의 한국금융사박물관으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금융사 전문 박물관으로 신한은행의 역사도 다루고 있습니다.

  박물관 3층에는 한국금융역사관이, 4층에는 금융생활체험관이 있습니다. 전자는 우리나라 금융의 역사가 주제고, 후자는 최근의 우리나라 금융과 기획전시실과 수장고가 있습니다. 3층으로 들어가면서 한국금융사연표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벽면에 영상도 재생되어 있었습니다. 흉년이나 자연재해가 닥쳤을 때 백성들을 돕기 위해 시행했던 구휼 정책도 소개되어 있고, 금융사의 일부라고 정리되어 있습니다.

  구휼 정책은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한숨을 돌리게 만들기도 했지만, 부작용으로 환곡 부정으로 백성들을 괴롭히는 사례도 나타났습니다. 삼정의 문란에서는 지지도 않은 빚을 떠넘기기도 했고 조선이 망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했죠.

  금융에 화폐가 빠질 수는 없겠죠. 박물관에는 다양한 종류의 상평통보 동전이 걸려 있었습니다. 화폐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화폐를 투자하거나 저장하는 일은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을 것입니다.

  조선 후기 상업이 발달하면서 도시 지역에 상인 집단이 더욱 형성되었습니다. 개성 상인들은 단기자금을 꿔주고 받는 일을 중개하는 일을 맡기도 했습니다.

  옛날의 계산기 주판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어린아이 크기 만한 주판을 보며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사실 필자도 주판을 직접 다뤄본 적은 손에 꼽습니다.

  돈을 빌려주고 갚는 일은 사람의 신용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옛날에도 문서로 남겨서 채무 관계를 확실히 했던 모양입니다.

  다양한 체험 공간도 있었습니다. 그 밖에 현금 대체 수단인 환(換)과 채용 증서로 사용되었던 어음, 상인 종류 중 보부상에 대한 설명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과거 한성은행의 모형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걸어가면서 전통시대 금융에서 근대기 금융 전시로 넘어갔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다양한 금융기관이 설립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상업이나 금융제도는 외국에 비할 바가 못 되었고, 우리나라 시장을 장악하려는 외국 은행은 점차 늘어났습니다.

  구한말 경제전쟁이 본격화되고 조선시대 상인들도 '한성은행', '농공은행', '조선은행 등의 민족은행을 설립하면서 시장을 지키고자 노력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2017년에 등록되었죠. 나라의 빚을 갚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백성들이 없는 살림에 조금이나마 보태다니 지금 생각해도 아련합니다. 이 땅에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실패로 끝났지만 대동은전이라는 서양식 근대 화폐도 도입되었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의 슬로건 중에는 담배를 끊고 자금을 마련하자는 취지가 있었습니다. 여성들은 장신구를 내놓기도 했답니다. 박물관에는 국채보상운동 취지서가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한반도의 은행은 식민지 금융 체제로 개편되었고, 1930년대 침략전쟁 시기부터는 전시 경제체제에 따라 군자금 조달을 위한 금융기관으로 전환되었습니다.

  한일합방 이전에는 일본제일은행권이라는 통화가 쓰였고, 이후에는 조선은행권이 유통의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1950년 한국은행이 설립되었으나 6.25전쟁과 광복 이후부터 심화되었던 경제 혼란으로 어려운 현실을 맞이했습니다. 갑작스러운 남침으로 한국은행도 북한군에게 약탈당했고, 당시 정부는 연합군의 도움을 받아서 실시된 새로운 은행권 발행을 통해 위조지폐 창궐을 방지했습니다.

 

 

  복권사업도 금융사의 일부입니다. 로또 당첨은 누구나 꿈꾸는 이야기죠. 1993년 대전 엑스포 기념 엑스포 복권도 붙여져 있었습니다.

  1960년대 시기에는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특수은행이 많이 신설되었습니다. 1970년대 고액권을 필요로 하자 1973년 만원권이 등장했습니다. 필자도 참 좋아하는 지폐입니다.

  이렇게 한국금융사박물관 3층 관람을 마쳤습니다. 다음에는 4층 금융생활체험관 관람 후기를 업로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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