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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하며, 새로운 지식과 상상력을 접하길 원하는 1인입니다. 스포츠에 관심이 많으며 주기적으로 헌혈하는 헌혈자이기도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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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역사 (2)
[미식축구]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교양 9 - 스포츠>에서 발췌한 미식축구와 NFL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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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1564364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교양 9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지식을 담은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교양> 시리즈. 뉴욕타임스의 최고 책임 편집진들과 각 분야의 전문 필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지식들을 모아 집필하고

book.naver.com

 

  시립도서관에서 위의 책을 대출해서 읽었는데 미식축구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몇 가지 내용을 발췌해서 블로그에 올립니다.

 

  책에서는 미식축구 말고도 농구, 아이스하키, 골프, 테니스, 복싱 등 다양한 종목을 다루었습니다. 스포츠 관련 내용이 아주 풍부합니다.

 

  책 목차에서 'Part 2'에 있는 내용입니다.

 

  1. 1876년 미국 대학 풋볼 협회(American Intercollegiate Football Association)가 설립되고 규칙이 제정되었습니다.

 

  2. 1892년 최초의 프로 풋볼 선수는 윌리엄 퍼지 헤펠핑거가 등장했고, 1986년 최초의 프로 풋볼 팀인 엘리게니 경기협회가 나타났습니다.

 

  3. 지금과 달리 당시 미국 국기 스포츠는 야구였고, 미식축구의 인기는 5대호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4. 풋볼은 전진 패스가 없는 럭비에 영향을 받았고, 1906년에서야 전진 패스가 합법화되었습니다

 

  5. 처음에는 필드골이 4점이었고, 터치다운은 초창기 4점에서 1898년에 5점으로 증가, 1909년에 1점이 추가되어 현재의 6점이 되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1920_APFA_season

 

1920 APFA season - Wikipedia

Sports season The 1920 APFA season was the inaugural season of the American Professional Football Association, renamed the National Football League in 1922. An agreement to form a league was made by four independent teams from Ohio on August 20, 1920, at R

en.wikipedia.org

 

  6. 미국 프로 미식축구 리그인 APFL(American Professional Football Association)이 1920년에 창설되었고, 2년 뒤 현재의 NFL이라는 명칭으로 리그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1920년 원년 팀 중에 지금까지 이어진 팀은 애리조나 카디널스(당시 시카고 카디널스)가 있고, 그 다음인 1921년에 그린베이 패커스가 리그에 가입했습니다.

 

  7. 1906년부터 1933년까지 전진 패스는 스크리미지를 기점으로 5야드 뒤에서야 가능했으나, 1933년 스크리미지 바로 뒤에서도 전진 패스가 가능하도록 규칙을 변화시켰습니다. 쿼터백의 힘은 이 때부터 강해졌습니다.

 

 

  8. 1930년대 후반 야구를 위협했지만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팀이 해체되거나 다른 팀과 합병하는 등 풋볼은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1943년 자유로은 선수 교체가 가능하도록 규칙이 개선되었습니다. 1946시즌부터 1949시즌까지 'AAFC(All-America Football Conference)'라는 경쟁 리그가 존속했으나 NFL이 1950년에 AAFC 팀 가운데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를 가입시키도록 유도했습니다.

 

https://www.pro-football-reference.com/boxscores/195812280nyg.htm

 

Championship - Baltimore Colts at New York Giants - December 28th, 1958 | Pro-Football-Reference.com

Baltimore Colts 23 at New York Giants 17 on December 28th, 1958 - Full team and player stats and box score

www.pro-football-reference.com

  9. 1958시즌 결승전 경기인 볼티모어 콜츠와 뉴욕 자이언츠는 최초의 결승전 연장 승부로, NFL 역사상 손꼽히는 명승부라고 합니다. 승리 팀은 콜츠였습니다.

 

  10. NBA에 리그를 크게 발전시킨 데이비드 스턴 커미셔너가 있다면, NFL에는 '피트 로젤'이라는 커미셔너가 있었습니다. 그는 1960년 1월부터 1989년 11월까지 총재 자리에 있었는데, 1967년 슈퍼볼(당시 NFL 우승 팀과 AFL 우승 팀 매치)을 출범시키고 1969년 경쟁 리그인 AFL과 리그 통합을 성공시키며 NFL의 몸집은 거인이 되었습니다. 경쟁 종목인 야구가 주춤하는 사이에 1970년대 미국 제1의 스포츠로 발돋움했습니다. 1978시즌부터 정규시즌 14경기에서 16경기로 확대해서 파이를 늘렸고, 일본과 영국과 독일의 주요 도시에서 NFL 시범 경기를 여는 등 해외 인기도 꾀했습니다.

 

  * 로젤의 업적을 기려서 슈퍼볼 MVP에게 수여하는 트로피의 이름은 '피트 로젤 트로피'로 명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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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메이저리그 공식 역사에 니그로리그가 포함된다는 소식을 읽고 느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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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81&aid=0003148687

 

니그로리그, 美 MLB 역사로 인정… ‘마지막 4할 타자’ 깁슨으로 바뀐다

조시 깁슨(1911~1947)미국 프로야구 ‘니그로리그’의 ‘전설적인 타자’ 조시 깁슨(1911~1947)의 기록이 메이저리그(MLB)에서 인정받게 됐다. MLB 사무국은 16일(현지시간) “야구사에서 오랫동안 간과

sports.news.naver.com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703255

 

니그로리그 기록 인정... MLB, 인종 차별의 벽 허물었다

[MLB] 흑인 선수들에 대한 인권 신장... 조시 깁슨 등의 공식 기록 인정

star.ohmynews.com

 

  메이저리그의 커미셔너 만프레드가 니그로리그 100주년을 맞아 니그로 리그를 메이저리그 공식 역사에 포함하기로 했네요. 니그로리그는 1920년부터 1960년까지 존재한 흑인 야구선수들로 구성된 리그였습니다. 지금이야 메이저리그가 피부색과 국적에 관계 없이 실력만 있으면 뛸 수 있는 리그지만, 당시 미국은 인종차별이 심각해서 흑인 선수들이 뛸 수가 없었습니다. 재키 로빈슨 이전에도 메이저리그에 여러 흑인 선수들이 기록을 남기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흑인이 메이저리그에 뛰는 건 터부시되어서 그 선수들은 메이저리그에 제대로 뛰지 못했고, 실력이 있음에도 팀에서 방출되었습니다. 오직 백인 선수들만 메이저리그에 뛸 수 있었습니다.

  흑인 선수들은 야구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니그로리그를 창설해서 자신들의 야구 경기를 펼치기 시작했죠. 실제로 사첼 페이지, 오스카 찰스턴, 조시 깁슨, 쿨 파파 벨 같은 니그로리그 선수들은 메이저리그에 뛰지 않았음에도 전설적인 야구 선수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위에서부터 조시 깁슨, 사첼 페이지, 오스카 찰스턴, 쿨 파파 벨입니다.

  조시 깁슨은 포수로서 800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했다고 추정되며, 3차례 4할 타율의 시즌을 소화했다고 전해집니다. 공수겸장 포수이기도 했는데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투수 월터 존슨은 깁슨의 송구를 총알로 비유했습니다.

  사첼 페이지는 25년 간 가까이 니그로리그나 각종 독립리그, 중남미 국가들의 리그에서 활동했습니다. 일각에서 전해지는 페이지의 커리어는 2000승-30000탈삼진-300완봉승-55노히트노런이라는 게임에서도 안 나올 법한 대기록입니다. 그는 실제로 1930년 메이저리그 vs 니그로리그 올스타 경기에서 22탈삼진을 잡아내며 완봉승을 달성했습니다. 디마지오도 시범경기에서 페이지를 상대로 4타수 1안타를 달성한 걸 자랑스럽게 여겼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투수 디지 딘도 '그(사첼 페이지)의 공에 비하면 내 공은 어린아이 수준이다."라고 감탄했습니다.

  오스카 찰스턴은 니그로리그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거론되는 인물입니다. 실제로 그의 명예의 전당 동판에는 'ALL TIME GREATS OF LEGRO LEAGUES'라고 칭송했습니다. 그는 중견수로서 최고의 5툴 플레이어였고, 니그로리그 역사상 수차례의 타율 1위, 홈런 1위와 가장 많은 도루를 기록했습니다.

  쿨 파파 벨은 야구 역사상 궁극의 주루를 만인에게 보였습니다. 홈에서 1루까지 도달하는데 3.1초, 4개의 베이스를 모두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2초 정도였다고 합니다. 현시대 주루의 대명사인 빌리 해밀턴이 가장 빠른 게 3.61초였다는 걸 비교하면 입이 떡 벌어지는 스피드입니다. 그의 무용담 중에는 3루가 아닌 2루에 서있어도 뒤타자들이 그냥 아웃이 되는 플라이볼을 희생타로 바꿀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문제는, 이런 니그로리그의 기록이 불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점수 진행 과정과 한 타석에서 던지는 투수, 수비하는 야수들, 공격하는 타자가 제대로 기록되어있는 경기가 많지 않습니다. 니그로리그의 기록이 빙산의 일각인 상황에서 WAR 같은 2차 스탯을 제대로 산출하는 건 불가능하고요.

 

  현실적으로 MLB의 발표는 니그로리그 기록을 더욱 연구하고 발굴하는 건이 우선적인 목적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니그로리그의 1홈런, 1삼진 가치가 메이저리그의 1홈런, 1삼진 가치에 못지 않다고 대접해주며, 옛 흑인 야구선수들을 더욱 레전드로 예우해주는 행동도 중요할 것입니다. 저 위의 선수들에 비견될만큼의 니그로리그 레전드가 있다면 MLB 명예의 전당에 빠르게 입성해주는 모습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스포츠, 야구 팬으로서 메이저리그에 흑인 선수들의 입성이 진즉에 허용되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어쩌면 베이브 루스와 월터 존슨보다 사첼 페이지와 오스카 찰스턴의 이름을 더욱 뚜렷하게 기억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축구의 펠레, 복싱의 슈가 레이 로빈슨, 미식축구의 제리 라이스, 육상의 우사인 볼트, F1의 루이스 해밀턴 등 수많은 종목에서 흑인 스포츠 선수들은 역대 최고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농구는 아예 흑인 선수들이 주도하는 스포츠고요. 그 시절 인종차별이라는 설움과 야구장 이용에 제한을 받으면서도 미국 프로야구의 족적을 남긴 니그로리그 선수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특히 9시즌 동안 메이저리그에 활동하면서 인종차별과 싸운 위대한 재키 로빈슨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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