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7시부터 아프리카tv에서 ASL 시즌 11 8강이 시작됩니다. 현재 남아 있는 스타크래프트1 오프라인 대회 중 가장 큰 규모의 대회죠. 8강 진출자는 테란의 유영진과 정영재, 프로토스의 변현제와 장윤철과 도재욱, 저그의 김명운과 임홍규와 조일장이네요. 예전에 16강 결과를 예측한 적이 있었는데 이 중 유영진, 변현제, 도재욱, 김명운만 적중해서 절반만 맞췄네요.
A조는 예상대로 변현제와 김명운이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변현제가 김명운을 잡아내고 조 1위로 올라갈 지는 몰랐네요. B조에서 시즌 10 준우승자인 박상현이 떨어져서 'ASL에서 지난 시즌 준우승자가 이번 시즌 16강 탈락한다'라는 명제가 10번 중 8번이나 들어맞았습니다. C조에는 흥행카드인 김택용과 김정우의 예상하지 못한 탈락이 있었고, 임홍규가 이렇게 잘할지 몰랐네요. D조에서는 이재호가 떨어진 게 아쉬웠고요.
8강 1세트: 변현제 vs 도재욱 - 5월 9일 일요일 오후 7시
8강 2세트: 정영재 vs 김명운 - 5월 11일 화요일 오후 7시
8강 3세트: 조일장 vs 장윤철 - 5월 16일 일요일 오후 7시
8강 4세트: 임홍규 vs 유영진 - 5월 18일 화요일 오후 7시
필자는 4강을 변현제 vs 김명운 - 조일장 vs 유영진 이라고 예측해봅니다. 이왕이면 4강에 3종족 별로 게이머가 1명 이상씩 있었으면 좋겠네요.
예전에 필자는 스타1판 팬이기도 했고 남은 리그인 ASL이 언제까지 진행될지 불투명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고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남아 이씁니다.
99년 공식적인 세계최강으로 등극한 이후 2001년 6월까지 2년 6개월동안 세계 최정상의 자리에 있었던 플레이어.
전설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칼리와 오리지널 시대부터 시작하여 브루드 워, 그리고 프로게이머 시대에 이르기까지 유일하게 각 시대별 최강자로 등극하였고 또한 아마추어. 베틀넷, 오프라인 프로게이머 리그까지 유일하게 최강자의 자리에 올라선 사나이.
그렇다. 바로 '세계 최강'이라는 닉네임을 가졌고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못하던 프로게이머. '기욤 패트리'가 이번 글의 주인공이다.
기욤 패트리의 커리어에 있어 단연 빛나는 부분은 '블리자드 월드 챔피언쉽' 우승이다. 이 대회는 기존에 열렸던 '블리자드 레더 토너먼트'와도 비교를 거부하며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온게임넷 대회건 MBC MSL 등 어떠한 대회도 대적할 수 없는 최고의 대회다.
쉽게 말해 이 대회는 레더 토너먼트에서 온갖 말이 오고 가자 블리자드가 작정하고 '그래! 어디 한번 공인 세계 최강을 공식으로 가려보자!' 취지로 블리자드가 내건 최후의 스타 크래프트 대회였다.
'기욤 패트리'는 이 대회에서는 순항을 거듭하고 결승에서 '김창선' (현 온게임넷 해설자) 에게 3:0이라는 일방적인 스코어로 1시간여 만에 우승 확정지으면서 블리자드가 인증한 공인 세계 최강 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PGL. 일치감치 프로게이머라는 것을 탄생시킨 북미에서는 협회까지 있었는데 여기서 주관한 북미 프로게이머 대회. 즉 지금으로 치면 온게임넷 스타리그 혹은 MSL 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서 기욤 패트리는 우승하면서 아메리카 대륙 제패.
그리고 유럽의 최정상의 플레이어들이 참가했었고 역시 전 세계의 상위랭커들이 모조리 참가한 '유럽 오픈' 우승으로 유럽 대륙 제패.
그리고 역시전 세계 상위랭커들을 초청하여 벌인 세계대전 l2e2 세계 대회 우승.
그리고 한국에 와서 이룬 하나로 통신배 스타리그 우승으로 한국 제패.
딱 여기서 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가? 바로 '세계 정복' 혹은 세계 제패. 그렇다. 최초의 그랜드 슬래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당시 전 세계적으로 스타 크래프트가 인기를 끌고있던 그 시절. 각 대륙을 접수한 것이다. 이런 큰 대회 말고도 99년 당시 기욤 패트리는 전 세계 각지의 대회를 모조리 쓸어담으면서 최악의 상금 사냥꾼으로 악명을 떨친바가 있다.
2000년 초에 열린 <하나로 통신배 스타리그>. 공식적으로 기욤패트리가 참여한 첫 대회다. 기욤 패트리가 한국에 오게 된 사정은 레더 토너먼트의 종료. 그리고 북미 프로게임리그 PGL의 종료 등 세계각지에서 스타 크래프트의 인기가 식어간 탓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최고의 인기를 끌고있다는 소식을 듣고 짐을 싸들고 한국에 정착할 목적으로 강림을 하였던 것이다. 자 여기서부터 베일에 쌓여있던 '기욤 패트리'의 플레이가 공개되기 시작하였는데 엄재경 해설위원이 평가하는대로 하나의 컬쳐쇼크 수준이었다고 말 할수 있었다.
당시 한국 프로게이머들의 플레이는 전형적인 빌드싸움. 교과서적인 플레이. 틀에 박혀있는 모습등으로 평가하는데 (이기석 선수가 초창기에 전술의 기초를 보여주긴 했었다.) 기욤 패트리는 현재의 스타 크래프트처럼 실시간으로 변하는 플레이. 심리전. 전략, 전술, 그리고 컨트롤 부분에서 지금의 스타 크래프트 경기체제를 보여주면서 순식간에 한국을 장악하였다.
즉 당시 기욤의 플레이는 신 문명의 혜택을 받지못한 한국 유저들에게 신 문물을 전도하는듯한 모습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혁명을 일으켰다. 쉽게 말해 스타 크래프트는 고정된 게임이 아니라 언제든지 변 할 수 있고 전술과 지형에 활용에 따라 판도가 달라지는 전략 게임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가르쳐준 모습이라고 할까?
그렇기에 현재 전략가의 계보를 따질 때 '기욤 패트리'가 최초의 전략, 전술가로 지칭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당시같은 시대의 프로게이머이자 전 KTF 매직엔스의 코치였던 박현준님의 언급을 보면 더욱 쉽게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박현준의 언급 -
다른건 몰라도 기욤선수는 정말 대단했죠. 그 어느시대의 최고의 게이머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보여줬었습니다. 지금 프로게이머 랭킹 1위와 2위는 비슷한 실력이라고 보면 되지만 그 당시 기욤과 열판해서 두세판 이길 선수는 없었습니다. 그 당시 나름대로 그 누구보다 잘한다고 생각했던 저도, 기욤에게 대부분의 스킬을 배웠습니다.
당시 분명히 세계적인 한축을 담당했던 한국 프로게이머들이 결국 '기욤 패트리'의 벽을 넘지 못한 이유가 있었던것이다. 그렇기에 숱한 경쟁자들을 따돌리며 '세계 최강'으로 올라섰던것이다. 당시 국내 프로게이머와의 역량은 정말 너무도 크게 차이가 났던 것이다.
하지만 천부적인 센스와 천재적인 감각.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기욤 패트리에게도 몰락은 찾아왔다. 여타 이유보다 당시 기욤 패트리의 시대를 경험한 유저였다면 공감할 이유. 바로 '극도의 게으름' 덕분이다. 당시 모든 부분에서 최고의 역량을 보여준 기욤 패트리 였지만 연습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게으른 천재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하루 연습 시간이 많아야 1~2시간에 불과하며 결승전같이 중요한 날에도 연습은 커녕 나이트에서 놀다가 와서 하는 등 극도의 게으름이 뭔지 잘 보여주는 일화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본인 스스로 자초했다고 할까? 물론 이 같은 게으름을 보인 이유도 있다. 역시 당시 프로게이머였던 박현준님의 언급을 한번 들어보자.
박현준의 언급 -
기욤이 한국에 와서 보여준 모습들 대부분의 경기들은 거의 준비가 되지 않은것들이었습니다. 한국 생활에 재미를 느끼면서, 2년여를 거의 연습하지 않았죠. 한국게이머들이 기욤을 따라 잡은것은 기욤이 스타에 손을 놓은 약 1~2년 후입니다.
자 여기서 알 수 있는것. 실질적으로 기욤 패트리는 스타를 하긴 했지만 진지하게 생각한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재능은 너무나 아쉬웠지 않는가? 박현준님의 언급에서조차 한국게이머들이 기욤을 따라잡았던 것은 스타크래프트를 사실상 거의 그만두다시피한 시기부터였다고 한다. 기욤 패트리 역시 2년전쯤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그때는 스타 크래프트가 이토록 오래가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오래 갈 줄 알았다면 열심히 했었을것이다.
기욤 패트리의 인터뷰 내용 中
하지만 여기서 필자는 아무리 이유가 그렇다고 하더라고 이런 부분에서는 옹호해줄 생각은 없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프로의 세계에서 치열한 승부근성이 반드시 필요하고 노력 역시 반드시 따라와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스스로 자초한것은 기욤 패트리의 명백한 잘못이다. 그리고 2001년 6월 대망의 LAST 1.07이 열린다.
이 대회는 온게임넷 역사상 유일하게 유료 입장을 받았으며 동시에 슈퍼 파이트 형식으로 연 최초이자 마지막 매치였다. 매치는 기욤 패트리 VS 임요환. 이 대회가 있기 전에 한빛 소프트배 스타리그에서 초 대박 결승 매치로 기대되었던 기욤 VS 임요환의 매치가 기욤의 4강 탈락으로 좌절되자 마련한 매치였다.
이 대회에서 임요환은 기욤패트리에게 3:0의 압승을 거두면서 공식적으로 자신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린다. 이렇게 LAST 1.07을 끝으로 2년 6개월간의 기욤패트리의 시대는 마무리되었으며 임요환이 또 다른 전설의 행보를 시작한다.
하지만 처참하게 기욤 패트리의 왕조는 그렇게 끝이 났지만 당시에 세계를 석권한 유일한 프로게이머였고 아마추어, 오프라인, 배틀넷, 프로게이머 시대에 이르기까지 유일하게 최강자를 증명하였고 세계 최강이라는 타이틀 달 수 있는 유일한 프로게이머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값어치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프로게이머의 수준을 확실하게 올려둔 공로는 정말 무시 할 수 없다.
스타1은 1998년 발매되어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게임입니다. 2001년에도 인기가 있었지만 그 전보다는 못했고, 그 이후부터는 거의 한국에서만 한정된 인기였지만 국민게임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하나의 문화였습니다. 다만 2007년부터는 스타 자체의 인기도 줄고 2011년에 팀들이 해체되고 리그도 축소되면서 2012년에 프로 E스포츠로서는 문을 닫게 되죠. 물론 이후에도 아프리카tv에서 ASL이 계속 열리고 있지만 공식 리그로 쳐주지는 않습니다. 엄연히 롤이 현재 최고 인기 게임이고요.
하지만 스타1은 게임방송이 스폰서가 붙고 돈이 된다는 점을 보여준 게임 중 하나입니다. 프로게이머 상금 자료 홈페이지인 ' https://www.esportsearnings.com/ ' 를 통해 상금 기준으로 스타1과 퀘이크라는 FPS 게임이 초창기 E스포츠 시장에 최고점을 기록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흔히 임요환을 스타1 초대 강자로 알고 있지만 기욤 패트리라는 이전 최강자가 있었습니다. 스타1이 전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었을 때 최강으로 군림했고, 임요환이 그를 꺾으면서 최강자로 등극하게 되었죠. 임요환의 상징성과 해외 평가가 높은 게 스타1의 제패를 한국으로 가져오면서 E스포츠 최강국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는 점일 것입니다. 이는 페이커와 SKK 멤버들(임팩트, 벵기, 피글렛, 푸만두)가 시즌3 롤드컵에서 우승하면서 한국 롤의 시대를 열은 것과 비슷하죠.
임요환도 양대리그 체제가 늦게 갖춰져서 손해를 본 경우지만 기욤은 그보다도 더할 것입니다. 임요환은 그래도 양대리그 기준 3번 우승을 경험했지만 기욤은 전성기 끝자락에 생긴 스타리그 우승 1회만 공식 우승만 인정받고 있죠. 심지어 기욤은 E스포츠 명예의 전당 홈페이지에 등록되어있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기욤의 커리어는 절대 무시받을 수 있는 레벨이 아닙니다.
리퀴피디아에서는 북미 게임 대회였던 1998년의 PGL 시즌3를 최초의 스타크래프트1 대회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 래더 토너먼트도 있지만 어뷰징 논란이 심각하고 상금 규모도 현격한 차이가 있어서 개인적으로 인정해주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회에서 기욤은 시즌3 3위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1999년 기욤은 PGL 시즌4 우승 등으로 본격적으로 최강자의 길을 걷습니다. 그 해 상금 1위를 기록하죠. 당시 스타1판이 상금 헌터 식으로 진행되었기에 더더욱 가치가 높습니다.
위에서 보면 1999년 E스포츠 대회가 나열되어 있는데 CPL이나 Desecent 대회는 스타1이 다른 게임 대회고, KBK 마스터즈는 당시 한국 게이머들만 참여했었던 대회로 추정되고, 래더 토너먼트는 어뷰징 논란이 심했습니다. 나머지 대회들 중 기욤은 PGL 시즌 4 우승, 스포츠 서울 컵 준우승, 블리자드 월드 챔피언십 우승, l2e2 인비테이셔널 대회 우승을 기록했습니다. 스타리그 전신 대회인 99 PKO 대회에는 참여하지 않았고요. 그야말로 출전한 대회에 대부분 우승, 적어도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더군다나 기욤은 유럽 파리 오픈 대회에서도 우승했다고 알려져있는데 저 사이트에는 누락되어 있어서 미처 기록되지 않은 커리어도 꽤 될 것입니다.
다음 해 그는 하나로통신배 스타리그에서 강도경을 누르고 우승을 기록했습니다. 프리첼배 스타리그에서는 8강에서 떨어졌지만 스타리그 왕중왕전에서도 국기봉을 이기면서 우승했습니다. 그러나 WCG 2000에서는 조기에 탈락하고, 다음해 스타리그에는 장진남에게 4강에서 떨어져서 3위를 기록했습니다. 2002년에도 겜tv 대회 준우승, 2003년 WCG에 3위를 기록하지만 그는 임요환에게 패권을 넘겨준 다음부터 최강자의 자리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명백히 최강자 위치에 있었음은 물론, 당시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4차례나 거머쥐었습니다. 잡대회를 빼더라도 PGL 시즌 4 우승, 스포츠 서울 컵 준우승, 블리자드 월드 챔피언십 우승, l2e2 인비테이셔널 대회 우승, 하나로통신배 스타리그 우승은 분명히 수십 명의 내로라하는 게이머들이 경쟁했었고 높은 상금이 걸린 대회에서 기록한 커리어였습니다. 여기에 홍진호가 인정 못 받아서 지나치게 평가 절하되는 스타리그 왕중왕전 우승과 포디움 커리어인 PGL 시즌 3 3위, 한빛소프트배 스타리그 3위도 있습니다. 당시 기록이 남지 않았던 대회도 있을 거라는 점까지 감안한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커리어 보유자입니다. 물론 임이최나 후대의 이제동, 이영호에 비하면 부족하겠지만 그 이외의 선수들과 비교해볼만은 합니다. 단순 1회 우승자들과는 확실히 격이 다르고요. 사견으로는 역대 스타1 게이머 중 양대리그 3회 우승자 라인인 김택용과 박성준 다음 가는 선수였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0년, 2011년 시상식에서는 후보들이 전체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기사를 찾기 힘들어서 조금씩 검색해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대상을 이영호가 받기는 했는데 다른 종목의 후보들이 제대로 정리된 표가 검색해도 안 나오네요. 스타1 시상식이 있었던 2013년 2월의 시상식은 스타1이 끝났고, 롤은 아직 초기인 시기라 협회에서도 따로 대상은 뽑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2008년 3월 이제동이 대상받을 때 같이 선정된 다른 종목 후보는 워크래프트 3의 장재호와 박준, 스페셜포스 팀 IT BACK-OP, 카운터 스트라이크 팀 eSTRO 입니다. 2009년 12월 재차 이제동이 수상할 때는 박준, 서든어택 esu 팀, 슬러거 서승덕, 스페셜포스 이호우, 피파온라인 김관형, 카운터 스트라이크 위메이드 폭스가 같이 후보로 선정되었습니다.
협회 입장에서는 프로리그를 중시했던 시상식이었습니다. 나머지는 프로리그에 가중치를 두면 약간이나마 납득이 갑니다. 다만 가장 마음에 안 드는 2가지는 2011년 때 김대엽이 송병구를 제치고 후보에 들어간 것과, 마지막 시상식에 이영호가 정명훈을 제치고 테란 수상자로 선정되었던 것인데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네요.
* 대한민국 E스포츠 대상 시상식은 2005년 최연성 전 감독이 대상을 받을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게 2016년까지 이어졌는데 2012년부터 2016년 중 4차례 롤 선수들이 받은 결과를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 위의 위키백과 홈페이지에서 롤 선수들은 수상자가 나와 있지 않고 후보들이 없는데 수상자와 후보군 모두 써보겠습니다.
* 참고로 2012, 2013 시상식에는 포지션별로 뽑기만 했고 대상 수상자는 따로 뽑지 않았습니다. 다만 2015, 2016 시상식에서 대상 수상자를 뽑기는 했는데 후보군은 따로 선정하지 않았습니다. 2014년 시상식은 삼성 화이트, 블루 선수들이 대대적으로 중국에 진출해서 인지 열리지 않았습니다.
* (사실상) LCK 시상식 기록을 정리하는 김에 LPL 시상식 기록도 정리했습니다. LPL 시상식 기록은 MVP, 포지션별 수상, 최고 외국인 선수까지 정리했습니다.
* 이렇게 보니까 2017년부터 LCK 쪽에는 시상식이 열리지 않고 2018년 명예의 전당으로 대신 선수들 업적을 기리는 게 살짝 아쉽기도 하네요.
* 아마 LEC와 LCS가 있는 유럽, 북미 쪽에는 이런 시상식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구글로 관련 검색어를 눌러봐도 안 나오네요.
* 2012년과 2013년에도 MVP를 뽑았다면 2013년에는 무조건 페이커일테고, 2012년에는 제 생각에 클템이나 매라 둘 중 한 사람이 받는 게 맞다고 봅니다.
* LPL 시상식에는 핵심인 MVP 수상자들이 매번 바뀌어서 아직 2회 수상자가 없습니다. 과연 언제쯤 2회 수상자가 나올지 모르겠네요. 현재 가능성 있는 건 탑으로 포지션 변경을 하고 승승장구하는 샤오후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많은 스포츠에서 명예의 전당은 선수들의 최종적인 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단 미국 스포츠 중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은 MVP보다도 훨씬 가치가 있고, 미국 농구 명예의 전당(NBA가 중심이지만 NBA 선수들만 들어가는 명예의 전당은 아닙니다.)도 선수들에게 영예로운 일입니다. NFL 명예의 전당 난이도는 MLB보다는 쉽지만 NBA보다는 어렵습니다.
다른 스포츠 중에도 복싱, 테니스, 골프, F1도 'Hall of fame' 등의 이름으로 선수 시절 훌륭한 족적을 남긴 선수를 명예의 전당에 입성시키고 있습니다. 각 리그 별로 나눠진 해외축구도 각 팀들이 따로 명예의 전당을 만들어서 기리고 있죠. WWE 같은 각본이 있는 프로레슬링도 명선수들을 헌액시키고 있습니다. 명예의 전당처럼 각 팀들이 소속되었던 선수들의 등번호를 영구결번 시키는 것도 소속된 선수들의 명예를 기억하는 행동일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도 헌혈 100회 이상 헌혈자들을 '헌혈 레드카펫'이라고 불리는 명예의 전당에 올리고 있습니다. 다만 이름과 헌혈횟수는 신청한 사람들에 한해서 홈페이지에 공개됩니다.
이는 한국 e스포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 스타크래프트1과 스타크래트프2가 병행된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예전에 프로게이머 20명을 명예의 전당에 헌액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다만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컨텐츠진흥원이 임요환, 홍진호, 이윤열, 최연성, 이영호 이렇게 5명의 스타1 프로게이머들을 아너스(Honors, 사실상 명예의 전당 선수들 중에서도 최고로 대우) 명예의 전당에 올리면서 위의 명예의 전당은 어느새 잊혀지는 분위기입니다. 나중에 롤의 벵기(배성웅), 엠비션(강찬용)도 아너스에 헌액되어서 이제는 7명이 되었죠.
개인적으로도 20명은 너무 많다는 느낌이 들어서 2017년에 새로 뽑은 5명 선수들이 마음에 듭니다. 다만 더 들어가야 할 것 같은 선수들이 있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E스포츠 명예의 전당 홈페이지에는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이 헌액되어 있습니다. 롤, 스타1, 스타2, 워크3, 도타2, 철권, 카운터 스트라이크, 카트라이더, 서든어택, 스페셜포스, 던파, 피파 등 게임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일정한 업적을 낸 경우라면 명예의 전당에 등록됩니다. 물론 승부조작범들처럼 게이머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경우는 배제되고요. 명예의 전당 선수들은 아너스, 스타즈(Stars, 매년 팬 투표로 1년 동안 선정), 히어로즈(Heroes, 모든 헌액자들이 여기에 포함) 이렇게 3곳으로 분류합니다.
제가 가장 오래 봤던 스타1판의 선수들중 아너스에 포함되어야 할 세 선수와, 그리고 그 다음 종목들 중 기억나는 워크3 선수들 중 히어로즈나 아너스에 포함되어야하는 선수들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솔직히 선수 개인이 기사로 은퇴 발표를 하면 된거지 은퇴확인서 같은 절차가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드네요. 워크3 선수들도 현재 4명(장재호, 박준, 김성식, 황태민) 밖에 히어로즈에 없는데 너무 적다는 느낌이 들고요. 명예의 전당에서 워크3 대회들 중 인정해주는 게 WCG 하나밖에 없다는 건 납득이 안 가네요.
일단 아너스에 헌액되어야 할 스타1 레전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 투신 박성준(저그, July)
- 역대 저그 중 2번째로 높은 스타1 프로게이머
- 스타리그 골든마우스(3회 우승) 수상자, 스타리그 우승/준우승 횟수 기준 커리어 1위
- 스타리그 우승자들 중 저그로서 최초로 테란(이병민)을 잡고 우승
- 질레트 스타리그 우승은 가장 위대한 스타1 개인리그 우승 중 하나
- MBC게임 히어로 팀에서 오랫동안 청년가장이었던 선수
- 통산 프로토스전 승률 1위
2. 혁명가 김택용(프로토스, Bisu)
- 반박의 여지 없는 역대 최고의 프로토스
- 프로리그 단일시즌 신기록(63승) 보유자
- MSL 금배지(3회 우승) 보유자, MSL 연속우승 보유자(최연성, 이윤열, 이영호도 마찬가지)
- 스타1 게이머들 중 통산 승률 3위, 통산 프로토스 vs 저그전 승률 1위, 프로토스 vs 프로토스 승률 1위
- 프로리그 기록도 통산 다승, 승률로 이영호-이제동 다음인 3위
- 곰tv MSL 우승은 가장 위대하고 드라마틱한 개인리그 우승 중 하나
3. 폭군 이제동(저그, Jaedong -> JD)
- 역대 최고의 저그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타1 프로게이머들 중 하나
- 통산 개인리그 5회 우승, 프로리그 다승 1위
- 통산 저그 vs 테란 승률 1위, 저그 vs 저그 승률 1위, 저그 vs 프로토스 승률 2위
- 개인리그 3회 이상 우승자들 중 최연성과 유이하게 세 종족(프로토스, 테란, 저그)를 모두 한 번 이상 결승에서 꺾은 커리어 보유자
- 07시즌부터 10시즌까지, 역대 모든 스타1 게이머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정상에서 군림했던 선수
- 스타2로 진출한 뒤에도 WCS 글로벌 파이널 준우승 등 크게 성공한 게이머
이렇게 세 선수를 아너스 명예의 전당에 올리고 싶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제동은 첫 발표에서 무조건 들어가야 했었는데 못 들어간 게 이해가 안 가네요.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은퇴확인서라는 절차가 그렇게 중요한 건지...
아무튼 이렇게 되면 스타1 레전드들 중 총 8명의 게이머가 아너스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4대천왕 중 유일하게 못 들어간 박정석 선수와 택뱅리쌍 중 유일하게 못 들어간 송병구 선수에게는 미안하지만 커리어를 중시하는 의견이라 어쩔 수 없네요. 8명이면 스타1이 대한민국 E스포츠 역사에 준 상징성을 고려해봤을 때 충분한 인원이라고 생각하고요.
다음으로 히어로즈에 포함되어야 하는 워크3 선수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것도 제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점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스타1에 비해 워크3 선수들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지 않아서(별명 등) 커리어만 간략하게 쓰겠습니다. 여러 명을 뽑으려다가 확실하게 들어가야 하는 선수 2명만 뽑았습니다. 커리어들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굵은 글씨로 표시했습니다.
1. 노재욱(언데드, Lucifer -> MichaeL)
WEG 2005 시즌3 3위
ESWC 2006 우승
Lenovo IEST 2006 3위
Intel Extreme Masters 2007 L.A. 준우승
E-stars 서울 2007 4강
Intel Extreme Masters 2008 글로벌 챌린지 4위
IEF 2011 4위
IEF 2012 4위
World GameMaster Tournament 2014 준우승
워크래프트 골드 리그 2020 윈터 시즌 3위
2. 천정희(언데드, Sweet)
ESWC 2004 4위
WEG 2005 시즌3 우승
한중 사이버 게임즈 2005 4강
블리자드 WWI 2006 우승
월드시리즈 비디오 게임즈 2006 준우승
Digital Life 2007 Am 준우승
PGL 2008 시즌2 3위
이렇게 두 선수를 명예의 전당에 포함시키고 싶네요. 사실 워크3가 세계적으로 인기 있었던 기간은 스타1보다 길었지만 반대로 한국에서는 스타1이 더 인기가 있었죠. 천정희 선수와 노재욱 선수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건 조대희 선수와 강서우 선수 정도인데... 들어가야 하는 지는 애매하다고 봅니다. 롤이야 국내든 국외든 압도적인 E스포츠 인기 게임이라서 선수들을 넉넉하게 뽑아야 한다고 봅니다만 스타1은 뽑힌 선수들이 많다는 생각이 드네요.
워크3 선수들 중 장재호 선수와 박준 선수는 여전히 워크3 판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은퇴 후에 당연히 아너스 명예의 전당에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타2 선수들도 몇 명 아너스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공허의 유산 이후 스타2를 안 봐서 쓰는 게 주저하게 됩니다. 롤 선수들은 나중에 혹시나 쓸 지도 모르겠지만요.
* 프로리그와 팀리그 전적, 스타리그 전적, MSL 전적을 밸런스 엑셀 데이터에 넣고 분석해봤습니다. 07시즌 이전과 이후로 나누기도 했습니다.
* 개인적으로 스타1 밸런스에 가장 큰 영향은 유명한 1.08패치고, 스타1 시대는 03시즌의 프로리그 출범, 김택용의 3.3혁명으로 시작된 07시즌과 드래프트 세대 이 두 가지로 크게 변화했다고 생각합니다. 총 3가지 기준을 나눠서 분기별로 분석했습니다.
* 유의미한 표본을 늘리려고 1.08 패치 이전의 종족 밸런스를 잡을 때 당시 기준으로 다양한 메이저 대회의 전적을 함께 포함했습니다. 온게임넷 스타리그는 물론, 게임큐 스타리그, KBK 마스터즈, itv랭킹전, KIGL 리그, WCGC(WCG 전신) 까지입니다. 당시 양대리그 체제가 갖춰지기도 전이었으니 이런 건 보정을 해야겠죠.
분석해보자면
1. 프로리그 같이 맵을 선택할 수 있는 단판전에서는 테란이 확연히 유리했습니다. 역시 가장 안정적인 종족이 테란이었죠. 양산형 테란들이 프로리그에서 많이 전적을 쌓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반면 07시즌 이후부터는 프로리그와 다르게 스타리그, MSL에서 테란은 여전히 유리한 종족은 아니지만 테사기 소리 들을 만한 종족은 아니었습니다. 하기 싫은 맵도 출전해야 했던 개인리그와 프로리그는 다릅니다.
3. 1.08 패치 이전과 이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블리자드가 주기적으로 밸런스 패치를 했으면 스타판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4. 저그가 토스 상대로 불리했던 적은 없다시피하고, 토스도 07시즌 이후에야 테란에게 반반 내지는 약간이지만 우위를 점할 수 있었습니다.
*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시즌이나 맵의 밸런스를 분석할 때, 단순히 저그 vs 테란 전, 테란 vs 프로토스 전, 프로토스 vs 저그 전으로만 분석하는 것은 시야가 좁다고 생각합니다. 동족전 수도 감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실제로 스타리그에서 박정석(토스) 한 명이 진출했고 MSL에서 이제동(저그) 한 명만 16강에 진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아웃라이너들이 높은 승률을 쌓아준다고 종족 밸런스가 맞다고 볼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개인리그 16강에서 토스 게이머는 2명 ~ 4명만 살아남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토스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야 개인리그 본선에 올라갔다는 이야기와도 같습니다. 이건 토스 TOP5 급 선수가 저그나 테란의 TOP 10 급 선수들과 붙은 기록이었는데도 토스는 스타판에서 계속 불리했다는 얘기죠.
* 맵으로도 관점을 돌려봐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종족전 간의 승률은 5:5 였는데 테테전만 30판 이상 나오면 이런 맵은 무조건 테란 맵이라는 게 당연하죠. 테란 게이머들만 살아남거나, 팀에서 테란 유리 맵이라는 걸 다 알고 테란 게이머만 출전시키는 것일테니까요.
* 그래서 이번 스타1 글은 동족전, 타종족전 전적 수에 따라 스타1 연도별 종족 밸런스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원래는 시즌별로 쓰려고 했다가 초창기의 시즌을 어떻게 잡아야할지 몰라서 연도별로 쓰게 되었습니다.
* 전적 출처는 와이고수 사이트인데, 다만 통산 전적으로 검색해보니 2002년까지는 저저전 숫자가 너무 많아서(테테전 숫자의 두 배 이상) 2003년 부터 1년 단위로 조사했습니다. 솔직히 2002년에 저그가 좋은 종족이라는 결과가 나올 수는 없으니까요. 다만 2002시즌 기록 중 나중에 공식 개인리그 전적만 따로 빼서 조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다만 2012년은 개인리그 대회도 하나만 열리고 프로리그도 축소되어서 표본이 작으므로 2011년 전적과 합쳤습니다. 밸런스가 50%에 가까울 수록 유리하지도 불리하지도 않은 종족입니다.
2003년 -> 2004년 -> 2005년 -> 2006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테란 vs 저그
55.3 : 43.7
51.2 : 48.8
57.6 : 42.4
55.4 : 44.6
저그 vs 토스
59.9 : 40.1
60.3 : 39.7
57.4 : 42.6
63.5 : 36.5
토스 vs 테란
44.4 : 55.6
43.4 : 56.6
50.6 : 49.4
50.4 : 49.6
테란 밸런스
55.5%
53.9%
53.5%
52.5%
저그 밸런스
52.2%
54.6%
49.9%
54.0%
토스 밸런스
42.3%
41.5%
46.6%
43.5%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테란 vs 저그
56.0 : 44.0
54.7 : 45.3
48.7 : 51.3
54.3 : 45.7
저그 vs 토스
55.5 : 44.5
53.8 : 46.2
60.0 : 40.0
57.8 : 42.2
토스 vs 테란
51.0 : 49.0
51.7 : 48.3
50.3 : 49.7
48.8 : 51.2
테란 밸런스
52.5%
51.5%
49.2%
52.7%
저그 밸런스
49.7%
49.6%
55.7%
51.8%
토스 밸런스
47.8%
48.9%
45.1%
45.5%
2011~2012년 / 2003~2012년 / 07시즌 부터 전적(2007.03.04 이후) / 1.08패치 이후 2006시즌까지 전적
2011년 ~ 2012년
2003년 ~ 2012년
07시즌~ 2012년
1.08패치 ~ 06시즌
테란 vs 저그
54.6 : 45.4
54.1 : 45.9
53.6 : 46.4
54.0 : 46.0
저그 vs 토스
53.4 : 46.6
57.9 : 42.1
56.4 : 43.6
59.5 : 40.5
토스 vs 테란
54.0 : 46.0
49.9 : 50.1
51.0 : 49.0
47.8 : 52.2
테란 밸런스
50.3%
52.1%
51.4%
53.1%
저그 밸런스
49.4%
51.9%
51.4%
52.8%
토스 밸런스
50.3%
46.0%
47.2%
44.1%
제 사견을 담아 정리하면
1. 테란 vs 저그도 저그가 강세였던 09시즌 제외하면 내내 저그가 불리했는데 저그 vs 토스에서는 그 이상으로 토스가 불리했습니다. 반면 토스 vs 테란은 황금비 밸런스였으며 초창기에는 테란이 아주 유리하기도 했었죠. 다른 2개의 타종족전이 토스 vs 테란 만큼의 밸런스였으면 스타가 밸런스 좋은 게임이 되었을 것입니다.
2. 스타1의 마지막 밸런스 패치였던 1.08패치이후 올드세대들까지는 더더욱 토스가 불리했고 테란 상대로도 약한 종족이었습니다. 김택용의 3.3혁명 이후부터 드래프트 세대가 자리잡고 많이 개선되죠. 다만 테란의 유리함과 저그의 유리함 만큼 토스는 불리함을 안고 경기를 치렀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죠.
3. 드래프트 세대 전까지는 토스가 테란 상대로도 불리했습니다. 단순 승률은 그 때도 대등하거나 토스가 1%~2% 높게 나옵니다. 하지만 다시 말씀드리는데 토스는 개인리그에서 소수만 살아남아서 종족의 S급만 살아남은데 비해 테란은 많이 진출해서 A급, B급 선수도 출전했는데 이런 무대에서 토스 S급 선수가 테란 A급 선수들을 많이 잡아낸다고 토스가 불리한 종족이 완화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동족전 개수를 고려하지 않으면 토스가 대등한 종족이라는 착시 현상이 나타나죠.
* 어제 글에 이어서 과거 스타1판 프로리그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린 강팀들을 돌아보겠습니다. 이번에는 2007 프로리그부터 오직 스타1으로 진행된 2012 시즌1 프로리그까지의 강팀들을 조명하겠습니다.
* 1편에서 팀리그 우승팀을 돌아봤듯이 2편에도 3차례의 위너스리그 우승팀들도 돌아볼 것입니다. 위너스리그는 승자연전방식이자 연단위 프로리그 전적에 포함된 대회로, 중간에 포스트시즌까지 포함해서 열렸던 대회였습니다.
* 07년도까지 전기-후기-그랜드파이널 체제로 가다가 08년도에 반시즌 프로리그를 진행하고, 그 뒤 3시즌을 연단위 프로리그로 진행하면서 경기 수가 많아졌습니다. 마지막 스타1 프로리그는 다시 시즌1, 시즌2(시즌2는 스타2와 병행)로 되돌아갔습니다.
강팀 1. 화승 OZ(전신 IS - Plus - 르까프 OZ)
* 2007 후기 프로리그와 그랜드파이널을 연달아 우승한 당대 강팀. 08-09 위너스리그와 프로리그에서 모두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 르까프로 창단된 건 오영종의 스타리그 우승이 결정적이었고, 여기에 역대 최강 저그 이제동과, 박지수, 구성훈의 대두되면서 당대 강팀으로 도약했습니다.
* 하지만 오영종의 공군 ACE 입대와 박지수의 KT 이적으로 이제동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지고, 해체되기 전 마지막 두 시즌은 2인자 구성훈도 점점 성적이 떨어져서 이제동 원맨팀으로 전락했습니다. 특히 토스 라인이 약점이었던 팀.
강팀 2. SK 텔레콤 T1
* 2007 시즌 완전히 몰락했다가 2008 시즌 다시 재기하고 완벽한 강팀의 면모를 되찾은 팀이었습니다.
* 08-09 프로리그 우승, 09-10과 10-11 프로리그 준우승, 10-11 위너스리그 우승, 2012 시즌 1 프로리그 우승으로 장기간 결승을 무조건 갔던 팀.
* MBC게임 히어로에서 영입한 김택용이 최연성의 뒤를 이어 에이스 역할을 해주고, 정명훈과 도재욱이 가세해서 '도택명'라인을 형성했습니다. 티원저그라고 불릴 만큼 저그라인이 약점이었으나 나름 박재혁, 이승석, 어윤수 등이 있었고, 다른 팀의 부족한 종족라인에 비하면 훨씬 사정이 나았던 팀이었습니다.
강팀 3. KT 롤스터(예전 팀명이 KTF 매직엔스)
* 09-10 위너스리그 및 프로리그 우승으로 창단 후 지긋지긋한 무관과 준우승의 저주를 끊어냈던 팀. 10-11 프로리그에서도 우승, 2012시즌 1 프로리그에서는 아쉬운 준우승을 기록했던 팀이었습니다.
* 절대자 이영호가 모든 시즌 팀 1인자에 자리잡았고 김대엽, 박지수, 우정호가 핵심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정호가 백혈병에 걸리자 그 자리는 김성대가 대체했습니다. 정규시즌에는 부족했지만 포스트시즌에는 괴물이 된 고강민도 우승에 기여했습니다.
* 09년도까지는 소년가장이라 불릴 만큼 이영호 의존도가 정말 높았습니다. 다만 그 다음시즌부터는 전체적으로 스쿼드가 좋은 팀으로 탈바꿈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09시즌을 기점으로 화승과 KT는 각각 이제동과 이영호의 원맨팀 유무가 서로 달라졌네요.
아쉬웠던 팀 1. 삼성 칸
* 2007 전기리그, 2008 전기리그 우승, 2007 그랜드파이널 준우승을 기록했던 팀. 2007 그랜드파이널에서의 준우승으로 위에 강팀에는 끼지 못했습니다.
* 팀 내 1옵션는 당연히 송병구였고, 허영무, 이성은, 차명환 등이 있었던 팀이고 07 이전에는 팀리그의 사나이 변은종에 에이스이기도 했습니다. 인간본좌 김동건과 스타1 말기에는 김기현, 유병준, 박대호 등의 신인들도 있었던 팀이었습니다.
* 삼성이라는 이름값과는 달리 e스포츠 팀에 대한 지원은 SKT, KT, CJ보다 한참 아래라는 이야기가 거의 사실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아쉬웠던 팀 2. CJ 엔투스
* 07 전기리그와 08 전기리그를 제외하면 내내 포스트시즌에 있었으나 뒷심 부족으로 우승이나 결승 진출에 많이 좌절했던 팀. 다만 08-09 위너스리그에서는 조병세의 극적인 역올킬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 변형태, 박영민 같은 베테랑들과 김정우, 신동원, 조병세, 한상봉, 장윤철, 진영화, 나중에 스파키즈와 합병하면서 들어온 신상문과 이경민 등 선수 라인업이 화려했습니다.
* 여담이지만 스타1 경기가 마지막으로 진행된 병행 리그(2012 시즌 2 프로리그)에서는 우승하기도 했습니다.
다 작성해보니 추억의 스타1판이 생각나네요. 홍진호가 프로리그에서 김택용을 잡아냈던 것이나 이영호가 이성은을 상대로 말도 안 되는 역전승을 거두었던 경기도 떠오르고, 이제동이 위너스 포스트시즌에서 KT 상대로 올킬을 쓸어담고 염보성이 박태민을 그랜드파이널 에이스 결정전에서 잡아낸 경기도 기억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