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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하며, 새로운 지식과 상상력을 접하길 원하는 1인입니다. 스포츠에 관심이 많으며 주기적으로 헌혈하는 헌혈자이기도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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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4)
[책 추천] 수잔 와이즈 바우어의 <세상의 모든 역사 중세편> 1권 ~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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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18005406

 

수잔 와이즈 바우어의 세상의 모든 역사

역사를 즐기고, 느끼고, 되새기기 위해서! 『교양 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역사 이야기』 저자 수잔 바우어가 처음으로 청소년과 성인 독자를 위해 쓴 세계 역사 이야기. 저자 특유의 생동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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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18005411

 

수잔 와이즈 바우어의 세상의 모든 역사

역사를 즐기고, 느끼고, 되새기기 위해서! 『교양 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역사 이야기』 저자 수잔 바우어가 처음으로 청소년과 성인 독자를 위해 쓴 세계 역사 이야기. 저자 특유의 생동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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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소한 역사 탐구와 세계사를 공부하고 싶으시다면, <세상의 모든 역사>를 추천합니다.

  저자 수잔 와이즈 바우어(Susan Wise Bauer, 1968~)는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영문학 교수입니다. 1990년대 소설을 편찬했지만 그보다 고전 교육 안내서를 집필했다는 면에서 유명해졌습니다. 가정에서 어린이들에게 고전 교육을 가르치는 'The Well-Trained Mind'라는 책을 냈고 현재까지 교육, 역사, 문학 에세이 등 다양한 학문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홈스쿨링' 방면의 선구자로 유명합니다.

  이 책은 대한민국에 올해 2월에 번역되어 출판되었습니다. 평소에 자주 방문하는 시립도서관에서 신간도서 목록에 있는 걸 보고 바로 읽었죠. 한 권 당 800페이지에 가까울 만큼 분량이 어마어마합니다. 1권은 4세기 부터 7세기 중반, 2권은 7세기 중반부터 12세기 초반의 십자군 이야기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근소한 차이지만 1권보다는 2권이 더 많은 시대를 다루고 있어 더 두껍습니다.

  이견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필자는 우리나라 역사 시각이 서양사와 중국사, 그리고 넓게 보면 일본사에 대한 관심은 많은데 중동사, 인도사에 대해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인도와 중동의 역사까지 다루고 있어 그 지역의 입문하고 싶으신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사실 세계사가 아니라 한 문화권의 역사만 집중적으로 다룬 책 중에서도 <세상의 모든 역사> 못지 않은 페이지인 경우가 꽤 될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이 책도 한 역사를 설명하고 풀어나갈 때 너무 길어지는 걸 피하기 위해 깊게 나가지 못하고 다소 수박 걸핥기 식으로 넘어간 면도 없지는 않습니다.

  당연하지만 세계사 중에서도 로마 제국, 비잔티움 제국, 우마이야 왕조,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과 같은 강대국들에 비중을 더 많이 할애했습니다. 세계사 책이니만큼 오랫동안 역사를 크게 바꾸어나갔던 강대국들을 중심으로 한 서술을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죠. 필자에게는 사산조 페르시아와 에프탈 유목민족의 대결, 4세기 ~ 5세기 강대국으로 군림했던 굽타 왕조 이야기 등의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중세시대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 패권다툼을 벌인 아바스/사만/가즈니/파티마 왕조의 이야기도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이 책은 전쟁, 경제, 인물, 시대 발전, 문화, 인구 등 다양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해하기 쉽게 지도와 역대 국왕 계보 등을 제시하여 독자들을 도우고 있습니다. 육하원칙 등이 차고 넘쳐서 남녀노소 이해하기 쉬울 만큼 눈높이가 적당합니다. 읽을 부분을 추려낸다면 아이들이 읽어도 무방하다고 단언합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고구려 - 신라 - 백제의 우리나라 삼국시대 역사와 통일신라 - 발해의 남북국 역사도 기대 이상의 비중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수나라/당나라와 고구려의 전쟁, 차례차례 등장하는 3국의 전성기, 신라의 골품 제도 등에 대한 내용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 역사에 능통한 학자를 몰랐다는 사실에 살짝 부끄럽기도 했고요.

  <세상의 모든 역사>를 읽을 시간이 부족하시다면 오랜 기간 동안 틈틈이 조금씩 읽으면서 독서를 진행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입니다. 역사를 잘 아는 분들도 다시 복습삼아 읽기에도 적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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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트 소개] 연도별 세계지도를 볼 수 있는 사이트 'Geacron'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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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geacron.com/the-geacron-project/

 

The Geacron Project | GeaCron

Historic information universally accessible for everyone, through intuitive and attractive geo-temporal maps.

geacron.com

 

  역사 지도를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구글에서 'World History Map'이라고 검색했는데 노다지 같은 사이트를 발견했네요. 'Geacron'이라는 사이트인데, 메르카토르 도법 형태를 통해 연도별로 세계 지도가 어땠는 지를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자세히 알아보니 꽤 오래전부터 있었던 사이트라 이제 알아낸 게 조금 쑥스럽기도 합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콤플루텐세 대학교가 있습니다. 이 학교의 지리 역사학 교수인 'Luis Múzquiz'가 만든 웹사이트가 바로 'Geacron'입니다. 홈페이지의 설명을 찾아보니 지정학과 역사의 상황을 알리기 위한위한 교육적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지리학과 관련된 데이터 응용 프로그램인 셈이죠. Luis Múzquiz 이외에도 여러 저명한 학자들이 함께 Geacron과 관련된 학술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 이 사이트가 왜 편리한가?

 

 

  이 사이트는 기원전 3000년 부터 지금까지 지도에서 어떤 국가가 탄생했고 멸망했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숫자를 누를 수 있는 네모 모양의 검색 칸에 보고 싶은 연도를 숫자로 누르시면 그 해의 세계지도가 나옵니다. 다만 기원전은 앞에 마이너스(-)를 붙여야 합니다. 가령 기원전 100년의 지도를 보고 싶으시다면 -100이라고 입력해야 됩니다. 1년 단위로 흐름을 자세히 볼 수 있고 마우스 중앙의 휠 버튼이나 지도 왼쪽 윗 부분의 +와 -를 통해 지도를 확대하고 축소할 수 있습니다. 위에 상하좌우 버튼도 있어서 지도를 동서남북으로 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역사 자료를 제작할 때나 취미로 역사를 탐구하실 경우에 지도가 필요하시다면 이 사이트를 참고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2. 예시

 

  기원전 1000년의 지도입니다. 색깔로 표시되지 않고 글자로 나와 있는 곳은 아직 국가를 이루지 못한 부족 단위로 이루어진 곳을 의미합니다. 아직 국가가 몇 개 안 되네요.

 

  기원후 1년 지도입니다. 로마 제국과 파르티아, 흉노와 한나라가 눈에 띄네요.

 

  기원후 1000년 지도입니다. 인도는 분열되었고, 동아시아에는 북송, 요나라(거란), 고려 등이 있고, 아랍권에는 파티마 왕조, 가즈니 왕조 등이 있고, 유럽 쪽에는 키예프, 신성 로마 제국, 잉글랜드, 프랑스가 보입니다.

 

 

  이번엔 1500년 지도를 찾아봤습니다. 당시 주요 국가들을 추려보면 오스만 제국, 티무르 제국, 스페인, 명나라, 북원(몽골)이 있었습니다.

  1850년 지도입니다. 한창 제국주의 시대였죠. 식민지였던 곳은 뒤에 소괄호가 있고 본국과 같은 색깔로 색칠되어 있습니다.

 

  이번에는 지도를 확대했습니다. 1942년 당시 나치 독일을 중심으로 찍었는데, 확대하면 중요 도시를 많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연단위로 볼 수 있으니 전쟁의 흐름도 파악할 수 있고 점령지도 다른 방식으로 표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프랑스 땅에서 비시 프랑스와 달리 나치가 직접 통치하는 북쪽 지역은 점령지로 다르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만 지도를 축소할 경우에는 좁은 곳에 국가 이름을 다 쓰기 어려우니 색깔로만 표시됩니다.

 

  3. Geacron 어플?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geacron&hl=en

 

GeaCron History Maps - Apps on Google Play

Interactive Historical World Atlas since 3000 BC Have you ever tried to identify the historical facts which were simultaneously happening, in any part of the globe, during a certain period of time? If you try, you will see the enormous difficulty it convey

play.google.com

  검색해보니 어플리케이션으로도 나왔네요. 다만 4,300원을 지불해야 하는 유료 어플이기는 합니다. 이 사이트에 대해 알아보니 계속 업데이트 되는 것 같네요.

 

  이런 유익한 사이트는 무조건 즐겨찾기를 하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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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허진모의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 1권~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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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캐스트 사이트인 팟빵이나 팟티의 역사 관련 팟캐스트 중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가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state0910/222151455614neovisionnew.tistory.com/80 <- 여기서도 언급했는데, 개그맨 장웅과 작가 허진모(본명: 정경훈)씨가 진행하며 역사 팟캐스트 중에 순위권 안에 들만큼 인기가 높습니다. 허진모 작가는 팟캐스트에서 허석사라고 불립니다. 매주 1회 씩 45분 ~ 1시간 분량으로 역사 스토리가 언급되는데 추천하는 팟캐스트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팟캐스트 말고 다른 팟캐스트는 듣는 게 없기도 합니다.

 

 

  사진 속 책인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 1권, 2권은 허진모 작가가 펴낸 역사책입니다. 사실 역사책은 한 국가(특히 중국)에 대해서만 다루거나 고대사, 중세사, 근대사 중 하나만 조명하는 책이 많은데 이 책은 역사 설명과 해석을 고대 문명부터 시작해서 중세시대까지 전부 다루고 있습니다. 3권, 4권 등 시리즈 별로 계속 나올 가능성이 아주 높아서 2권까지는 10세기까지 나왔습니다. 아랍의 경우 아바스왕조를 비롯한 여러 국가들까지 나왔고 중국은 5대 10국 시대까지 나와있습니다.

 

  단순히 글로만 딱딱하게 설명하는 건 아니고 지도와 그림, 유물 사진과 연대표도 있어서 역사에 입문하는 사람도 이해하기 쉽습니다. 1권의 부제목은 '모든 지식의 시작'이고, 2권은 '기원부터 천 년까지'입니다.

 

  책 내용 중에는 전쟁사의 비중이 가장 높지만 주요 국가들의 체제, 군주와 주요 인물들을 둘러싼 정치 과정, 문명과 종교와 유물에 대한 기록에 대해서도 평가했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역사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서도 적합한 책이고, 성인들이 역사를 복습하기 위함에도 알맞는 책입니다. 책을 읽으면 저자에게 강의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제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우물 안 개구리나 편협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제가 알고 있는 상식은 아주 미미하다고 생각하며, 그 상식 또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도 계속 움직여야 하듯이, 두뇌를 계속 깨우치기 위해서 역사를 공부합니다. 역사 속 인물들에게서 배울 점과 기피할 점을 알고, 이를 자신에게 투영하여 스스로 어떤 길을 걷고 있는 지 평가하기 위해 역사를 공부합니다. 나태함은 죄악이며 세계관을 넓히는 것이 역사 배움의 목표입니다. 그런 이상으로 걸어가기 위해서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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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의 천적, 영광과 비운의 명장 가르친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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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친링(Gartrinring, ???~699).

 

  토번의 장군이자 재상으로서, 7세기 최강국이었던 당나라를 상대로 연이어 대승을 거둔 인물입니다. 7세기 당나라는 사방으로 영토를 넓혀가던 시기였습니다.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신라도 복속시려 했고, 돌궐도 수십 년 동안 장악했었죠. 이런 당나라를 상대로 가르친링은 대비천 전투, 승풍령 전투, 인식가 전투, 소라한산 전투에서 역사에 남을 전공을 취합니다.

 

  그는 토번의 명재상 가르통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7세기 중후반, 토번의 국력은 신장하고 있었습니다. 663년, 가르통첸은 토욕혼이라는 유목민족을 멸망시킵니다. 4년 뒤 가르통첸이 사망하고 그가 갖고 있던 재상직은 첫째 아들 가르친네에게, 군권은 둘째 아들 가르친링에게 주어집니다. 군권을 잡고 가르친링은 강주를 침범하는 등 당나라를 상대로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도저히 토번을 용납할 수 없었던 당고종은 설인귀와 곽대봉에게 토번을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대비천 전투(Dafeichuan Battle, 670년)

  구당서에 따르면 설인귀는 토번 원정이 멀고 땅이 험해서 수레가 오고가기 어렵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빠르게 정예군으로 속전속결로 끝내야한다고 결정했습니다. 곽대봉에게 후방의 군수물자를 맡기고 그 중 수레와 말에 실은 물자는 후방의 요충지에 보관하라고 알렸습니다. 그는 직접 선봉을 이끌었으며, 하구에서 토번군을 격퇴하고 양 1만마리를 전리품으로 취했습니다. 그는 기세를 몰아 오해성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곽대봉은 설인귀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자신의 병력을 이끌 때 수레와 말에 군수품을 실어서 간 것이지요. 그는 신속하게 설인귀와 합류하지도 못했고, 토번군의 기습에 참패하고 포로로 잡힙니다. 군수물자도 빼앗긴 상황에서 설인귀는 대비천까지 후퇴하지만 가르친링에게 괴멸당하고 역시 포로로 잡힙니다.

 

  심지어 당군의 초반의 승리는 가르친링의 계획대로였습니다. 가르친링은 곽대봉의 당군이 설인귀의 당군과는 달리 진군이 느리게 진군하는 정보를 획득합니다. 그는 동생 가르찬파에게 병력과 양들을 내어준 뒤 당군 선봉대와 만나면 싸우는 척만 하고 퇴각하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설인귀가 토번군 잔당과의 승리에 고무되어 앞으로 나아갈 동안, 가르친링은 동생과 함께 곽대봉을 격파하고 있었습니다. 오해성 앞에 있던 설인귀는 그제서야 다급히 기병대를 보내지만 가르친링이 계획한 매복에 괴멸당했고, 가르친링은 후퇴하던 설인귀의 남은 병력도 섬멸했습니다.

 

  그 해 가르친링은 당나라가 서역에 설치한 안서사진(귀자도독부, 비사도독부, 소륵도독부, 언기도독) 영토를 빼앗았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전투에서 동원된 당나라의 병력은 최소 10만 대군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승풍령 전투(678년)

  당고종은 678년 이경현, 유심례 등에게 18만 대군을 주어서 토번을 침공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선봉을 이룬 유심례의 당군은 대비천 전투와 비슷하게 기세를 타서 청해호(지도의 칭하의호)에 이르렀습니다. 가르친링은 직접 대군을 이끌고 청해호에서 유심례를 죽이고 당군 수만 명을 괴멸시킵니다.

 

  가르친링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승풍령으로 퇴각하던 이경현의 본대를 쫓았습니다. 그는 대군을 이끌고 고지대에서 당군을 기습하여 포위했으며, 선봉장 발지설에게 기병 부대를 주어서 포위섬멸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 때 백제 출신의 당나라 부하 장수 흑치상지가 결사대 500명을 이끌고 발지설의 토번군 부대를 습격했습니다. 포위망은 뚫렸고, 가르친링은 이경현과 당나라 몇몇 장수들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승풍령에서의 대승으로 당나라는 재차 많은 병력을 잃었고, 청해성 일대를 토번의 영토로 포함시켰습니다. 그는 2년 뒤 사천성 지역의 안융성을 점령했습니다. 계속 총력적인 원정을 벌이지 않는 대신 당나라 서쪽 지역을 계속 약탈했습니다. 685년 그의 형이자 토번의 재상인 가르친네가 죽고 군권과 함께 재상을 겸하게 되었습니다.

 

 

  인식가 전투(689년)

   영문위키에 따르면 이 전투는 지금의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인식쿨 호수와 가까운 강에서 벌어졌다고 합니다.(위 지도의 회색으로 체크된 부분의 호수가 인식쿨 호수입니다.) 689년, 측천무후는 위대가와 염온고에게 10만 대군을 이끌고 토번을 정복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가르친링이 이끄는 토번군은 강을 사이에 두고 당군과 대치했습니다.

 

  겨울인 시기라 매서운 추위가 창궐했습니다. 사나운 바람과 함께 폭설이 내려서 당군은 시야 확보가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가르친링은 강이 꽁꽁 얼고 폭설이 내리자 당군을 기습했습니다. 당군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지리멸렬했습니다. 대병력을 잃고 남는 당군도 퇴각하는 도중 상당수가 추위에 얼어죽었습니다. 측천무후는 패전에 화가 나서 위대가를 유배시키고 염온고를 참수했습니다.

 

  하지만 692년 측천무후는 왕효걸에게 30만 대군을 주어서 총력전으로 안서사진을 회복하게끔 합니다. 가르친링의 동생인 가르다고리가 15만 대군을 이끌고 안서사진을 지키고 있었지만 왕효걸에게 참패를 당해서 안서사진을 내주게 됩니다. 동맹이었던 서돌궐의 장수 아사나뇌자가 10만 대군으로 구원하러 오지만 태반이 소멸당하고 말았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가르친링은 당나라를 상대로 강경하게 나섰습니다. 695년 당나라의 임조를 공격해서 약탈하자, 측천무후는 임사덕에게 10만 대군을 더 주어서 기존의 왕효걸의 대군에게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토번 내부에서는 당나라와 강화하자는 신하들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소라한산 전투(696년)

  소라한산 전투는 현재 중국의 우웨이 시 주위의 산맥에서 벌어졌습니다. 최소 10만, 최대 40만 대군이라는 압도적인 전력의 당군에 비해 전력이 한참 부족하고 심지어 연패하기까지 한 자국의 군대로 맞서기 전 가르친링은 이런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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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pa'o gTsug-lag phreng-ba 연대기, Lhobrag판, 목판본에 기록된 가르친링의 시 -

많은 작은 새가 한 마리 매에 의해 살해되며

많은 작은 물고기가 한 마리의 수달피에 의해 죽임을 당하네

크게 자란 뿔에도 불구하고

수사슴은 짦은 뿔을 가진 야크를 당하지 못하네

백년된 소나무도 하나의 도끼에 베어지며

강은 작은 배로 건널 수 있다네

평야전체에서 자라나는 대맥과 쌀은 하나의 물방아로 빻아지고

뭇별들은 하나의 태양에 의해 빛을 잃네

계곡 밑에서 발화된 불이 산을 태우고

한 샘물의 물이 산과 평원의 모든 나무를 운반하네

하나의 돌이 평원에 있는 단단한 돌을 흙으로 만들고

풀전체는 버려진 철조각 보다 빨리 썩네

솥에 가득 찬 물도 소금을 넣으면 짜게 되고

무수한 풀도 낫 하나로 베여지며

가느다란 화살로 여러마리 야크가 죽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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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곱씹어보면 적은 수의 군대일지언정 당나라의 몇 배의 대병력을 반드시 격퇴하겠다는 의지를 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696년 3월, 산악지대에서 양쪽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전투 끝에 가르친링은 또다시 적들의 공세를 막아내고 당나라에게 참혹한 패배를 안겨주었습니다.

 

  아쉽게도 전투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아서 가르친링이 어떻게 역전시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기적적인 전공을 세웠습니다. 이는 해하 전투에서 항우가 승리한 것과 같은,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 바르카가 승리한 것과 비견될 믿기지 않는 역사적 승리였습니다. 당군의 총사령관 왕효걸은 평민으로 강등되었습니다.

  한스러운 몰락

  소라한산 전투 이후 가르친링은 측천무후에게 안서사진에서의 철수와 서돌궐 지역의 영토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측천무후는 가르친링의 정권이 사상누각이라는 걸 알고 거절했다고 합니다. 전투 이전 토번의 많은 귀족들이 가르친링을 눈엣가시로 여겼고, 토번의 군주 치둑송첸은 왕권 강화를 위해 많은 권력을 차지한 가르 가문의 시대를 끝장냈습니다.

 

  699년, 가르친링이 토번 병력과 함께 멀리 있을 때 치둑송첸은 사냥을 이유로 병사를 모아 가르 일족과 가르친링을 따르던 부하들 2천 명을 몰살시키고, 가르친링에게 수도 라싸로 오라고 압박합니다. 가르친링은 왕명을 거부하고 남은 가신들과 부하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지만, 명분이 없어서 대다수 군사들이 가르친링의 곁을 떠나버립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가르친링은 백여 명의 부하들과 함께 자살을 선택합니다. 그렇게 가르친링은 죽고, 그의 동생과 아들은 당나라로 귀순합니다.

 

 

  가르친링에 대해

  가르친링의 대표적인 전투들은 모두 방어전이었지만, 그는 소규모의 선제공격을 계속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수비에 빛나면서도 점진적으로 토번의 영토를 넓힌 공수겸장의 명장이었습니다. 당나라와의 국경지대를 야금야금 빼앗고 약탈함으로써 참지 못한 대규모 정벌군을 파견할 때를 기다렸습니다. 당나라의 대군이 올 때면그도 대군으로 상대했습니다. 각개격파로 승리했고, 계절을 이용해 기습으로 승리했으며, 마지막에는 초대형 회전에도 승리했습니다.

 

  토번의 위세는 8세기까지 이어졌습니다. 승풍령 전투 이후 신당서 토번열전에는 토번의 영향력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당시 토번(吐蕃)은 양동(羊同), 당항(党項) 및 여러 강족(羌族)의 땅을 모두 점령했으니, 동쪽으로는 양주(涼州), 송주(松州), 무주(茂州), 휴주(巂州) 등지와 서로 접했고, 남쪽으로는 파라문(婆羅門, 인도)에 이르렀으며, 서쪽으로 또한 구자(龜茲), 소륵(疏勒) 등 4개의 진(鎭)을 점령했고, 북쪽으로 돌궐(突厥)과 맞닿아, 땅이 만여 리에 이르니, 한(漢), 위(魏) 이래 서융(西戎)의 번성함이 이와 같은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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