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부천시에 안중근 의사 동상과 유묵이 있는 안중근공원이 있습니다. 7호선 부천시청역과 상동역 사이의 송내대로 사거리에 위치한 공원입니다. 찾아보니 나무위키에도 항목이 있네요. 공원 중간에 형성된 큰 길을 따라가보면 수많은 어록과 한자로 되어 있는 유묵이 새겨진 석조물이 곳곳에 많습니다. 공원 안내도를 보니 공원에 있는 석조물을 시비석이라고 부르네요.
그 밖에 운동시설이나 놀이기구도 있고, 스마트나누림센터라는 편의시설도 있습니다. 꽤 공간이 있는 야외 광장도 있고, 유묵 말고도 안중근 의사 연보가 써진 시비석도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자작시도 읽어보면서 역시 달변가이자 문필가이신 분이라고 느꼈습니다. 큰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무대 공간도 있고 안중근 의사 동상도 보고 돌아갔습니다.
최근에 안중근 의사와 관련한 포스팅을 여러 번 했었습니다. 작년 11월에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안중근의사기념관'을 관람했고, 2023년 연초에 뮤지컬 영화 <영웅>을 관람한 뒤 후기를 올렸죠. 도서관 800번대 서가에서 <하얼빈>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호기심에 꺼내보니 제목 그대로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다룬 책이었습니다. 역사소설이고 2022년에 편찬된 책이라 신간에 가깝습니다.
이 책은 안중근 의사의 생애 중 하얼빈 의거를 중점으로 두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가 아니라 생애 마지막 2년인 1908년부터 시작하죠. 당시 굉장히 암울했던 시대상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대표에는 이토 히로부미와 통감부가 있습니다. 대한제국 조정 회의 내용을 A부터 Z까지 보고받고 있고, 직접 대신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조정은 그의 눈치를 살피기 바쁩니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입니다.
대한제국을 침략하려는 이토와 회복하려는 안중근의 내용이 서로 번갈아 가면서 등장합니다. 책을 읽으면 두 인물이 하얼빈으로 가까워지는 과정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책의 주요 등장인물로 빌렘 신부가 등장합니다. 프랑스에서 온 천주교 신부로 안중근 의사에게 세례를 주어 토마스라는 세례명을 받게 했습니다. 그는 독립 투쟁을 하려는 안중근 의사를 말리고, 천주교 전도와 교육을 중시하라고 말했습니다. 소설 속 안중근 의사는 몇 번이고 고뇌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마음을 품었지만 대한독립이라는 사명도 컸습니다. 결국 의병 전쟁에 나서고 이토를 총으로 저격했죠.
하얼빈 의거 직후 미조부치라는 검찰관이 나옵니다. 심문할 때의 질문이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그대의 소행이 사람의 도리와 종교의 가르침에 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에 안중근 의사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했던 그는 미조부치의 독촉에도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구국을 향한 계획을 실행에 옮겼음에도 또 천주교라는 가치관을 버리지 않았다. 그가 서거하기 전 빌렘 신부를 만나 고해성사를 합니다. 안중근 의사가 행한 일련의 과정에서 빌렘 신부는 뉘우치지 않고 있다고 꾸짖지만, 안중근 의사는 굽히지 않습니다.
또 다른 고뇌는 의거를 전날인 10월 25일 밤이 백미였습니다. 그는 하얼빈 역의 구도를 생각하고, 몇 발이나 쏠 수 있을지 계산하고, 어떻게 권총을 이토에게 조준할지 준비했습니다. 밤에 총을 쥐고 방아쇠를 당기는 그의 모습을 소설에서는 정말 훌륭하게 묘사되었습니다. 잡히기 전까지 몇 번이나 쏠 수 있을까 하는 심리가 나타나 있습니다.
책을 읽으 안중근 의사와 같은 순국선열이 처했던 현실이 얼마나 암울했는지 재차 알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인생의 갈림길이 사람을 송두리째 바꾸는지 실감했습니다. 그것도 두 가지 가치관이 맞지 않다면 더더욱 고뇌하게 되고요. 감히 말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만, 당시 안중근 의사도 천주교 신자로서 총을 쏘는 결정을 내릴 때 마음을 간단하게 정리하시지는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가장이자 남편으로서의 안중근 의사도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하얼빈에서 이토가 죽은 후 아내 김아려와 가족들은 미조부치에게 잡혀서 심문을 받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안중근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남편은 죽었다고 말합니다.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는 그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안중근 의사도 의연한 태도를 취합니다. 미조부치가 가족들 사진을 보여줄 때 자녀들이 어떻게 성장했고 아내를 보고 젊은 어머니의 힘이 느껴진다고 내심 감상합니다. 하지만 심문 과정에서는 아무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독립이라는 대의 앞에서 일본 검찰관의 술수에 걸려들지 않고, 가족의 인연도 포기하는 내용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비록 소설이지만 안중근 의사가 불세출의 독립운동가이자 위인이라는 사실을 재차 알게 되었습니다.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관람한 내용도 스쳐지나갔고요. 역사에서 순국선열의 노고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하루빨리 한국에 도착했으면 좋겠습니다.
작년 연말에 <아바타: 물의 길> 외에도 관람한 영화가 하나 더 있는데 그건 <영웅>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묘사한 영화로 최근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관람했던 필자로서는 약간 기대되기도 했습니다. 뮤지컬 영화라는 주제도 생소했지만 신선할 것 같기도 했고요. 지난 번 아바타처럼 부모님이 대신 표를 예매해주셔서 편하게 관람했습니다.
뮤지컬 영화는 외국 영화 가운데 <맘마미아>는 들어봤고, <사운드 오브 뮤직>는 봤습니다. 한국 영화 중에는 관람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영웅>이 개인적으로 최초였습니다.
지난 번 영화 <올빼미>를 관람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영웅>을 보러 다시 CGV 구리점에 왔습니다. 이번에는 팝콘 없이 가방에 물통만 챙겨서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6층으로 올라가 영화관 4관에 앉았습니다. 영화관 좌석은 평균과 맨 뒷줄 사이의 중간 자리를 선호합니다.
원작인 뮤지컬 <영웅>을 관람한 적이 없어서 조심스럽지만, 우선 노래가 너무 지나치게 많이 나와서 지켜운 느낌이 있었습니다. 영화 초반처럼 손가락을 자르고 대한독립의 혈세를 쓰는 결의가 담긴 노래에서는 대단했지만, 만두 먹을 때 나오는 노래는 최악이었고 또 대사로 개그할 때를 보면 종잡을 수 없는 기분이었습니다.
의병 전쟁을 치렀고 이토의 암살 등 중요한 일을 앞두는 사람들이니 영화 자체에 묵직함이 더 가미되었으면 좋겠는데 아쉬웠습니다.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영화 <백두산>에서도 거사를 치르는 데(원자 폭탄 사용) 과한 개그 요소가 많이 나왔다고 감상했는데 이 영화도 그런 면이 있었습니다.
개그 때문에 긴장감이 생기다가도 사그라들어요. 그리고 후반으로 갈수록 식상한 노래가 적지 않습니다. 계속 웅장한 느낌만 가득하고, 단체로 노래를 부르는 건 나쁘지 않지만 화려한 안무도 딱히 없고 촬영 각도도 놀라운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원래 뮤지컬에서도 똑같은 것인지...
하얼빈 거사 부분이 너무 간단하게 나온 것도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악당이자 침략자인 이토를 처단하는 클라이맥스가 짧게 나오자 이게 끝인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죽이기 전 안중근 의사의 실행 과정을 길게 늘리고, 거사 후 '코레아 우라'라고 외치는 안중근 의사의 모습과 국내외 반응 등을 늘렸어야 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 밖에도 안중근 의사가 고뇌하는 모습을 더욱 조명하거나, 일제의 침략이 구한말 조선 ~ 대한제국에 어떠했는지 스쳐지나가는 기억 등을 넣고 안중근 의사가 강인한 동기부여를 얻는 장면도 넣어서 주인공으로 띄워주는 것도 나았을 것 같아요.
좋은 점을 말씀드리자면 안중근 의사 역할의 정성화 배우, '설희'라는 궁녀 출신의 스파이 조력자 역할의 김고은 배우, 조마리아 여사 역할의 나문희 배우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김고은 배우의 애절한 노래도 기억에 남지만 특히 조마리아 여사가 안중근 의사에게 보내는 편지와 심금을 울리는 노래에는 필자도 울었고요. 안중근 의사와 설희가 서로 다른 배경에서 애절한 연기를 펼쳤던 점은 높이 평가합니다.
노래 자체는 만두 부분과 너무 많이 나온다는 점만 빼면 좋았습니다. 특히 정성화 배우의 발성은 실로 엄청났습니다. 그 외에도 이토 역할의 김승락 배우도 영화에서 일본 고위층과 군대 앞에서 연설 겸 노래를 부르는데, 진짜 야심가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외에 의병 전쟁 전투씬과 추격전도 재밌게봤고요.
한국 영화에 뮤지컬 영화라 신선한 감정을 많이 받았지만, 개그 등 과유불급이었던 부분이 많았던 게 큰 흠이었습니다. 별점을 매기자면 5점 만점에 3점 주고 싶네요.
기념관 주위에 안중근 의사 광장이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 동상이 있고, 그가 남긴 유묵(생애에 남긴 글씨나 그림)이 새겨진 돌이 곳곳에 있어서 엄숙한 마음으로 둘러봤습니다. 유묵 하나하나가 모두 걸작입니다.
광장 사진을 찍고 기념관으로 내려갔습니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은 매주 월요일, 매년 1월 1일, 추석과 설날 연휴를 제외한 다른 날에 개관합니다. 다만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개관하고 그 다음 날 휴관입니다. 3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11월부터 2월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합니다. 무료로 관람하실 수 있지만, 100명 이상 단체로 방문하신다면 예약하고 가셔야 합니다.
지하 1층에 안중근 의사의 좌상이 있는 중앙홀이 있고, 제 1전시실이 있습니다. 1층에 제 2전시실, 2층에 제 3전시실과 기획전시실과 체험전시실이 있습니다.
그 유명한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이 먼저 보입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옮겨 묻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를 위해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을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이 유언을 컴퓨터로 직접 옮겨 적었습니다. 이런 분이 우리나라 위인인 역사가 정말 자랑스럽네요.
안중근 의사의 연대기가 눈에 띕니다.
안중근 의사의 가문이 독립운동가 명문 가문이었죠.
안중근 의사의 가계도가 나타나 있습니다.
1층으로 올라가 제2전시실로 바로 갔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가톨릭 세례를 받아서 '토마스'라는 영세명이 있죠.
교육운동을 중심으로 활동하셨고 국채보상운동에도 기여하셨던 안중근 의사는 국운이 점점 기울자 의병을 통한 독립 전쟁에 나섰습니다.
해외에서 의병을 조직하여 일본군과 맞섰지만 아쉽게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초기에 성과를 내서 일본군을 포로로 잡았지만 당시 만국공법에 따라 안중근 의사가 죽이지 않고 풀어주었는데, 이 포로들 때문에 의병 위치가 들키고 기습을 당합니다. 의병이 분열하고 안중근 의사는 몇몇 동지들과 함께 배고픔을 이겨내면서 러시아 연해주로 살아남습니다.
그 뒤 11명의 동료들과 함께 '동의단지회'라는 독립결사대를 결성합니다.이들은왼손 약지를 잘라서 생긴 피로 태극기 주위에 '대한독립'의 글자를 썼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에서 네 번째 손가락의 첫 마디가 없는 것은 이 역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한 번 더 에스컬레이터를 타서 2층으로 도착했습니다. 제3전시실에 그 유명한 하얼빈 의거를 다루고 있습니다.
거사 당일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가 차이자거우(채가구)역을 그냥 통과하고, 안중근 의사의 동지들인 우덕순, 조도선 등이 여관에서 갇혔다는 이야기는 예전에 위인전에서 본 적이 있었습니다. 누가 그들을 가뒀나 궁금했는데 러시아 경비병이었네요.
그러나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침략자 이토를 심판했습니다. 저격이 성공한 뒤 체포되는 와중 안중근 의사는"코레아 우라!(러시아 어로 대한제국 만세!)"를 외쳤죠.
이토에 대한 정보도 나타나 있습니다.
제3전시실에서 안중근 의사의 재판 과정과 조사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 중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이유를 밝힌 안중근 의사의 주장이 인상 깊어서 영상을 찍었습니다. 이토의 만행과 동양평화를 주장하셨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5개월 동안의 옥중 생활에서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마지막까지 독립의 열망을 이어갑니다. 다만 <동양평화론>은 일본이 약속을 어기고 사형 날짜를 앞당겨서 미완성으로 끝납니다.
하얼빈 의거에서 정확히 5개월 뒤,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셨습니다.
기획전시실로 갔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유묵의 의미는 안중근의사기념관 홈페이지로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나 독립운동 역사와 관련된 물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스탬프로 찍는 체험장이 있습니다. 필자도 찍어서 간직했습니다. 하나는'인내(忍耐)', 다른 하나는'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라는 한자입니다. 후자는 그 유명한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포스트잇으로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작은 편지를 쓰는 공간도 있습니다. 필자도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한 장 붙였습니다.
휴게실 추모 공간에서 조용히 묵념한 뒤 기념관을 나왔습니다.
기념관 근처에 다산정약용선생 동상과 퇴계이황선생 동상이 있어서 사진을 추가로 찍었습니다.
하루빨리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아서 우리나라로 모셔오고 역사적 장소에 안장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