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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하며, 새로운 지식과 상상력을 접하길 원하는 1인입니다. 스포츠에 관심이 많으며 주기적으로 헌혈하는 헌혈자이기도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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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 스타1] 과거 스타1 프로게이머 숫자에 관한 자료 모음과 스타1 드래프트 세대에 대한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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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글링을 통해 예전 스타1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니 '한국컨텐츠진흥원'에서 2010년 5월에 내놓은 '게임 문화 및 게임컨텐츠 동향' 자료가 있어서 예전 프로게이머들, 그 중에서도 되도록 스타1 프로게이머들 숫자에 대해 찾아봤습니다.

 

 

 

  전체 프로게이머들 숫자는 2001년 131명을 시작으로 중간에 떨어진 추세가 있었지만 계속 증가했습니다. 2007년 상반기에는 371명에 이렀죠.

 

  케스파 홈페이지에서 검색해보니 04년 하반기 ~ 07년 하반기까지 스타크래프트1 프로게이머들 현황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 http://e-sports.or.kr/board_kespa2018.php?b_no=6&_module=data )

 

KeSPA 한국 e-Sports 협회

KeSPA 한국 e-Sports 협회

e-sports.or.kr

 

여기서 스타크래프트1 프로게이머들 숫자만 추려보면

 

2004년 11월: 103명(=프로게이머 교육 이수자들 현황)

2005년 4월: 117명(= 프로게이머 등록 현황)

2005년 9월: 120명(="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게임단별 등록 선수)

2006년 4월: 162명(="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게임단별 등록 선수)

2006년 8월: 191명(="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 게임단별 등록 선수)

2007년 4월: 212명(="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등록선수)

2007년 9월: 230명(="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등록선수)

 

  위의 한국컨텐츠진흥원의 전체 프로게이머 숫자 중 스타1 프로게이머들의 비중이 차지했던 비율은 대략 50%~65% 사이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2010년 하반기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했던 전체 프로게이머 현황을 찍어서 첨부합니다. 2008년~2010년 상반기 프로게이머 현황에 대해서는 케스파 홈페이지에서도 찾기가 힘들고 구글링을 해도 잘 안 나오네요.

 

 

 

  준프로게이머들은 모두 제외하고 총 437명 중 259명이 스타크래프트1 프로게이머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전체 인원 중 60% 정도가 스타1 선수였던 셈이죠.

 

  다음은 2005년 하반기부터 시행되었던 스타크래프트 드래프트에 대해서 찾아봤습니다. 케스파 홈페이지에 검색해보니 기사 자료가 남아있었습니다. ( http://www.e-sports.or.kr/board_pro2014.php?b_no=2&_module=proleague&_page=view&b_no=2&b_pid=9999904200 )

 

KeSPA 한국 e-Sports 협회

2011년 하반기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신인 드래프트 개최

www.e-sports.or.kr

 

 

  2011년 하반기에는 양대리그 대회였던 스타리그/MSL 개최 여부도 불투명해져서 몰락했고, 그 뒤의 드래프트는 스타1이 끝났으니 당연히 스타크래프트2 선수들을 선발하는 것으로 전환되었고, 해외나 과거 연맹팀들 연습생이나 아마추어들도 자유롭게 대회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2008년과 2009년 때도 스타크래프트 선수들은 더욱 꾸준히 유입되었습니다. 아마도 이 시기에 전체 프로게이머들 숫자가 가장 많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본격적으로 프로게이머들 숫자가 증가한 시기는 2006년 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PGR21에서 어떤 분이 온게임넷 스타리그 예선 참가자 숫자를 조사할 때도 06년 때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옵니다. 2007년에도 더욱 늘어났고요. ( https://pgr21.com/free2/56024 )

 

 

[기타] [스타1] 격동의 2007 시즌 : 드래프트 세대 라이즈

1. 개인적으로 스1판의 시대를 구분하자면 2001 시즌과 2003 시즌과 2007 시즌 - 여기서 시즌은 연도와는 구분되는 개념입니다. 2003년 즈음부터는 확실하게 양대리그 체제가 구축되어 3월 경에 양 방

pgr21.com

 

 

  프로게이머들 숫자가 늘어나면서 경기 수준이 상향되고, 이제동-이영호의 쌍두마차를 필두로 드래프트 세대들이 올드 게이머들을 밀어내고 스타판을 장악하게 됩니다. 특히 이제동은 과거 전설들에게 강하다는 의미로 '레전드 킬러'라는 별명이 있기도 했었죠. 확실히 과거 스타1판 경쟁 수준은 07년 중반부터 심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올드 게이머들이 드래프트 세대들에게 이건 나이 때문도 아니고 실력과 개념에서 앞섰던 게 컸다고 생각합니다. 나이 때문이라면 아직도 30세 중반의 장재호가 워크3판의 핵심으로 활동하고 26살~27살의 조성호와 이신형과 전태양이 스타2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로 활동한다는 게 설명이 안 되니까요.

 

  이런 걸 감안하면 택신 김택용의 3.3혁명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06시즌이 끝날 때(연도로 보면 2007년 3월)를 기점으로 스타판이 전후로 나뉘는데 택신께서 크게 기여했으니까요. 그는 드래프트 세대들의 대표주자 중 하나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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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에 원촌공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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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구리시에 원촌공원이라는 작은 공원이 있어서 작년 여름에 찍은 사진 몇 장을 공유합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쉼터와 아담한 놀이터, 벤치와 운동기구도 있는 아담한 공원입니다. 주변에 나무도 많아서 더울 때 그늘에 있을 수 있는 공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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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메이저리그 포지션별 역대 최고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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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 선수를 2차 스탯으로 평가할 때 투수는 Bwar과 Fwar 모두(다만 Bwar에 가중치를 더 줍니다.), 타자는 거의 Fwar과 Wrc+로 평가하는 편입니다.

* 지명타자는 타격만 충분하면 어떤 타자도 소화할 수 있는 포지션이라고 생각해서, 딱히 최고를 뽑지 않았습니다.

* 타점, 득점은 큰 의의가 없다고 생각해서 딱히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안타, 홈런, , 볼넷, 도루, 타율-출루율-장타율(이하 타-출-장), WRC+. OPS+를 표시했습니다. 투수의 ERA+와 ERA-는 각각 베이스볼 레퍼런스와 팬그래프의 조정방어율인데, 평균 투수를 100으로 놓고 구장의 차이와 타고투저인지 투고타저인지를 분석하는 기록입니다. ERA+는 숫자가 높을수록 좋고 ERA-는 숫자가 낮을 수록 좋습니다.

 

 

1. 투수 - 월터 존슨(1907~1927)

 

5914.2이닝 3509삼진 방어율 2.17

ERA+147 ERA-68 Bwar 151.9 Fwar 117.1

 

- The Greatest pitcher of all time. 투수 가운데 역대 블랙잉크 1위, 그레이잉크 2위, 110완봉승이라는 대기록의 소유자. 이닝, 삼진, 방어율 모두 1위 시즌을 수없이 만든 투수로 그의 커리어는 완벽합니다. 삼진 1위 시즌을 12번 소화했으며 월터존슨 이후 3000삼진 투수가 다시 나오는 건 5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월터 존슨보다 높다고 말할 투수는 사이 영 뿐인데, 지배력의 차이가 커서 월터 존슨이 위라고 생각합니다.

 

 

2. 포수 - 자니 벤치(1967~1983)

 

통산 2048안타 389홈런 891볼넷 68도루, 타출장 .267 .342 .476

OPS+126, WRC+125

Bwar 75.2 Fwar 74.8

 

- 70년대 신시네티의 막강한 타선인 '빅 레드 머신'을 이끈 포수. 자니 벤치는 포수 미트를 통해 한 손으로 투구를 받는 방식을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포수의 수비 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10개의 골든글러브를 받을 만큼 역대 최고의 수비력을 가진 포수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고, 400홈런 가까이 치는 등 타격에서도 막강했습니다.

 

 

3. 1루수 - 루 게릭(1923~1939)

 

통산 2721안타 493홈런 1508볼넷 102도루, 타출장 .340 .447 .632

OPS+179, WRC+173

Bwar 114.1 Fwar 116.3

 

- 베이브 루스와 함께 양키스의 황금기를 이끈 역대 최고의 1루수. 통산 Wrc+가 173인 기록은 공동 역대 3위(로저스 혼스비와 동일)로, 베이브 루스와 테드 윌리엄스 다음입니다. 게릭이 1927시즌 기록한 Fwar 12.5 + Wrc+209 기록은 1루수로서는 불멸의 기록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는 14시즌 동안 2130경기를 연속으로 출장할 만큼 철인이었는데, 이 기록은 1995년 칼 립켄 주니어가 경신하기까지 깨지지 않았습니다.

 

 

4. 2루수 - 로저스 혼스비(1915~1937)

 

통산 2930안타 301홈런 1038볼넷 135도루, 타출장 .358 .434 .577

OPS+175, WRC+173

Bwar 127.1 Fwar 130.3

 

- 7번의 타격왕, 통산 Wrc+173에 달하는 엄청난 슬러거이자 윌리 메이스 다음 가는 우타자. 혼스비는 1920시즌부터 1925시즌까지 타율/출루율/장타율 모두 리그 1위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아메리칸리그의 지배자가 베이스 루스라면 내셔널리그 지배자는 로저스 혼스비였습니다. 그는 1924시즌 타율 .424와 Fwar 12.5를 기록했는데, 그와 한 번이라도 경기에서 만난 투수들 중 안타를 맞지 않은 투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할 정도로 투수들의 공포였습니다.

 

5. 3루수 - 마이크 슈미트(1972~1989)

 

통산 2234안타 548홈런 1507볼넷 174도루, 타출장 .267 .380 .527

OPS+148, WRC+147,

Bwar 106.9 Fwar 106.5 Wrc+147

 

- 필라델피아 필리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이자 이견의 여지가 없는 역대 최고의 3루수. 'Hot Zone'이라는 포지션인 3루수에서 홈런왕 8회와 골든글러브 10회의 엄청난 대기록을 달성할 만큼 공격과 수비 모두 완벽했습니다. MVP 3회 수상은 어떤 약물 복용 선수를 제외하면 공동 1위의 수상 기록입니다.

 

 

6. 유격수 - 호너스 와그너(1897~1917)

 

통산 3420안타 101홈런 963볼넷 722도루, 타출장 .328 .391 .467

OPS+151, WRC+147,

Bwar 130.8 Fwar 138.1 Wrc+147

 

- 데드볼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이자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의 '최초의 5인' 중 한 명. 타율 1위 시즌과 OPS 1위 시즌을 각각 8번씩 만들고, 도루 1위 시즌도 5번이고 수비에서도 팬그래프의 Def 수치에서 184.4를 쌓을 만큼 무결점 유격수였습니다. 그만큼 '완벽함'으로 평가하면 와그너를 능가할 선수가 손에 꼽힐 것입니다. 홈런 개수가 101개인 것은 그가 데드볼 시대에서만 뛰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1908시즌 와그너는 안타, 2루타, 3루타, 타점,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토탈베이스 모두 1위를 차지하고 Fwar도 11.8을 기록했지만 홈런이 3개 부족해서 트리플 크라운 달성에 아쉽게 실패했습니다.

 

 

7. 좌익수 - 테드 윌리엄스(1939~1960)(1942~1945년 2차 대전으로 경력 중단, 1952~1953년도도 한국 전쟁으로 43경기만 출전)

 

통산 2654안타 521홈런 2021볼넷 24도루, 타출장 .344 .482 .634

OPS+191, WRC+188,

Bwar 121.9 Fwar 130.4

 

- 최후의 4할 타자이자 보스턴 레드삭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통산 출루율 .482는 역대 1위이며, 그가 1941시즌 기록한 출루율 .553은 어떤 약쟁이가 2002시즌과 2004시즌에 갱신했지만 약물 기록은 무의미하므로 단일 시즌 출루율 1위는 테드의 몫일 것입니다. 전성기 시절 5년 가까운 기간을 전쟁 참전으로 상실했는데, 그가 온전히 뛰었으면 메이저리그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입니다. 열악한 전쟁 환경에서도 그는 야구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습니다. 2차 대전과 한국전쟁 사이의 기간에서 그는 OPS 1위 시즌을 5번이나 만들어냈고, 한국전쟁 참전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3번이나 만들었습니다.Wrc+는 통산 2위일 만큼 타격 면에서는 궁극이었지만, 수비가 좌익수 수비를 봤는데도 아주 못했다는 점은 옥의 티입니다.

 

 

8. 중견수 - 윌리 메이스(1951~1973)(테드의 52~53년도와 비슷하게 메이스도 52년도에 34경기만 출전하고 53년도에 경력 중단)

 

통산 3283안타 660홈런 1464볼넷 338도루, 타출장 .302 .384 .557

OPS+ 156, WRC+154,

Bwar 156.2 Fwar 149.9

 

- 윌리 메이스를 가리켜 "Willie could do everything from the day he joined Giants"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완벽한 5툴 플레이어였습니다. 최근에 발표된 'The Athletic'의 역대 야구 선수 순위에서 베이브 루스를 제치고 1위를 할 만큼 메이스는 간혹 역대 최고의 야구 선수로 불리기도 합니다.(그러나 필자는 루스가 당연히 역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며, 12회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과 통산 660홈런, OPS 1위 시즌 5번을 기록했습니다. 골든글러브 수상 규정이 1957시즌에야 신설되었는데, 일찍 신설되었으면 메이스는 더 많은 수상 기록을 남겼을 것이고, 테드 만큼은 아니지만 메이스도 2시즌 가량을 군복무로 손해봤습니다.

 

 

9. 우익수 - 베이브 루스(1914~1935)

 

통산 2873안타 714홈런 2062볼넷 123도루, 타출장 .342-.474-.690, OPS+206, Wrc+197

Bwar 182.5(타자 162.1 + 투수 20.4) Fwar 180.8(타자 168.4 + 투수 12.4)

 

 

- 그 어떤 수식어가 필요없는 야구 역사상 역사상 최고의 선수. 스포츠 역사상 가장 강력했으며 위대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은 스포츠인. 루스는 홈런이라는 패러다임으로 데드볼 시대를 종결시키고 라이브볼 시대를 열었습니다. 정규시즌보다 월드시리즈에서 OPS가 높아지기도 했으며, 양키스 시절 7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지금의 뉴욕 양키스를 만들었습니다. 루스는 통산 장타율, OPS, Wrc+, OPS+, Bwar, Fwar 모두 1위에 군림하는 'Greatest of all time'이었습니다. 그는 누적과 임팩트 모두 견줄 야구선수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투수로서도 통산 2.28의 방어율과 1916시즌 1.75의 방어율을 찍고 방어율 1위 시즌을 만드는 등 투타겸업의 커리어도 남겼었습니다. 여담으로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두 차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서 31이닝을 소화하면서 0점대 방어율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1927시즌 루스가 기록한 60홈런은 로저 매리스가 1961시즌 61홈런으로 갱신했지만, 약물 복용자들을 제외하면 오직 매리스 만이 이 기록을 깼습니다. 현대 야구의 선수들로서는 루스의 기록을 깨는 게 'Mission impossible'로 여겨지는데, 루스가 세운 통산 180이 넘는 War과 Wrc+197의 타격, 10번의 출루율 1위 시즌, 13번의 장타율과 OPS 동시 1위 시즌 기록은 공포감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듭니다.

단적인 비유로 브라이스 하퍼가 2015시즌 Wrc+197, Fwar9.3을 기록하면서 그 시즌 압도적인 최고의 선수로 지배했었는데, 베이브 루스는 통산 Wrc+가 197인데다가, Wrc+가 200이 넘는 시즌을 1919시즌부터 1931시즌 동안 자그마치 10번이나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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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가능골공원에서 찍은 사진들을 업로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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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리시청과 교문도서관 사이에 있는 공원으로 역시 주변에 주거단지가 많습니다. 제가 갔을 때 예전에 눈이 많이 내렸지만 날씨가 따뜻해서 눈이 녹아내리던 시기였네요. 놀이터와 방범대 건물, 경로당과 비를 피할 수 있는 쉼터가 있는 작은 공원입니다. 개인적으로 구리시청 가는 길에 가끔씩 보는 공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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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단일 시즌 가운데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선발 투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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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단일 시즌 최고점을 찍었던 선발 투수들을 비교해보겠습니다. 범위는 아메리칸리그가 창설된 1901시즌부터 지금까지입니다. 투수로서의 가치는 선발 투수가 마무리 투수보다 월등하다고 생각해서 선발 투수만 놓고 비교했습니다.

 

* 투수로서 Bwar과 Fwar을 둘 다 고려했습니다. 선수의 전체 커리어로는 Bwar을 더 중시하지만 단일 시즌 비교는 반반이라고 봅니다.

 

* 오랜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삼진과 이닝, War 등 시대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단일 시즌 기록에서 그 시대에 다른 선수들을 얼마나 압도했는 가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또 전인미답의 대기록을 달성했다고 여긴 경우라면 개인적인 보너스 점수를 주기도 했습니다.

 

* 작성한 기록은 이닝, 삼진, 방어율, Fwar, Bwar, ERA+(Bwar, 레퍼런스 쪽 조정방어율). ERA-(팬그래프 쪽 방어율 보정)를 썼습니다. 해당 시즌 리그 1위 기록에는 굵은 글씨를 표시했고, 전체 1위 기록에는 기울인 글씨를 추가했고, 만약 역대 1위 기록(1901시즌 부터 지금까지)이라면 빨간색 글씨를 더 붙였습니다.

 

 

 

1. 1908시즌 크리스티 매튜슨

 

390.2이닝 259삼진 1.43 방어율

Fwar 10.8 Bwar 11.7 ERA+169 ERA-61

 

- 역대 메이저리그 시즌 중 역대 1위의 FIP 시즌(수비 무관 투구 기록, 1.29). 단일 시즌 Fwar 역대 4위로 1960년대까지 최고의 Fwar 기록.

 

 

 

 

2. 1912시즌 월터 존슨

 

369이닝 303삼진 1.39 방어율

Fwar 9.3 Bwar 13.2 ERA+243 ERA-42

 

- 데드볼 시대의 300삼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즌. 이 시즌의 월터 존슨 이후 300삼진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투수는 1946시즌 밥 펠러로, 자그마치 34시즌이 걸렸습니다. 단일 시즌 Bwar 2위의 기록.

 

 

 

 

3. 1913시즌 월터 존슨

 

346이닝 243삼진 1.14 방어율

Fwar 8.5 Bwar 15.1 ERA+259 ERA-39

 

- 단일 시즌 Bwar 역대 1위의 대업을 달성한 역대 최고 투수의 시즌입니다. 모든 기록에서 전체 1위, 심지어 다승, 승률, 완투승, 완봉승 횟수도 전체 1위였습니다. ERA-는 역대 6위, ERA+는 역대 5위(단축 시즌이었던 2020시즌 제외), 단순 방어율은 역대 5위로 역사에 남을 궁극의 기록.

 

 

4. 1968시즌 밥 깁슨

 

304.2이닝 268삼진 1.12 방어율

Fwar 8.6 Bwar 11.2 ERA+258 ERA-38

 

- 역대 방어율 3위, ERA+ 역대 6위(단축 시즌이었던 2020시즌 제외)의 대기록이 나온 시즌입니다. 역대 방어율 1위, 2위의 선수들이 War이나 이닝이 부족해서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그에 비해 깁슨의 이 시즌은 독보적이었습니다. 투고타저시대인 걸 감안하더라고 1.12의 방어율은 불멸의 기록입니다. 13번의 완봉승도 기록했는데 이는 역대 3위로 라이브볼 시대인 1920년대 이후부터는 역대 1위입니다.

 

1968시즌은 메이저리그 역사를 가르는 시즌입니다. 투고타저를 완화하기 위해 다음 시즌부터 마운드의 높이가 15인치에서 10인치로 조정되었고, 아메리칸리그에 지명타자제도가 도입되었죠.

 

 

 

5. 1972시즌 스티브 칼튼

 

346.1이닝 310삼진 1.97 방어율

Fwar 11.1 Bwar 12.1 ERA+182 ERA-80

 

- Bwar 역대 5위(라이브볼 시대로 한정하면 역대 2위), Fwar 역대 2위. 칼튼은 이 시즌에서 최약체였던 필라델피아 필리스 팀의 총 승수의 절반 가까이(59승 중 27승)를 맡았습니다. 지금은 볼 수 없고, 역대로도 거의뽑기 힘든 야구에서의 '원맨캐리'라면 칼튼의 이 시즌을 우선적으로 뽑고 싶습니다. Bwar과 Fwar을 모두 11 이상 달성한 것은 오직 칼튼 뿐입니다.

 

 

6. 1985시즌 드와이트 구든

 

276.2이닝 268삼진 1.53 방어율

Fwar 8.9 Bwar 12.2 ERA+229 ERA-44

 

- 라이브볼 시대 Bwar 역대 1위, 역대 메이저리그 선수들 중 2년차 선수가 이렇게 잘한 경우는 거의 보기 힘들 것입니다. 앞에서 1969시즌부터 마운드 높이가 낮아졌다고 말씀드렸는데, 구든의 1.53 방어율은 50년 넘게 깨지지 않았습니다. 비율 스탯과 누적 스탯 모두 완벽했던 최고의 시즌이었습니다. 큰 의미는 없지만, 구든이 마약을 멀리하고 자기관리에 철저했다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아직도 남습니다.

 

 

 

 

7. 1999시즌 페드로 마르티네즈

 

213.1이닝 313삼진 2.07 방어율

Fwar 11.6 Bwar 9.8 ERA+243 ERA-42

 

- 모든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일 시즌 Fwar 투수 1위, 스테로이드 시대라고 불릴 만큼 극한의 타고투저 시대의 FIP 1.39라는 기록은 충격과 공포였습니다. 2018시즌이 끝나고 mlb.com은 역대 사이영 수상자들의 단일 시즌을 비교하면서 1999시즌의 페드로가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고 말했습니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477&aid=0000148620&redirect=false ) 이 시즌 올스타전에서 2이닝 무실점 5삼진의 퍼포먼스는 아직도 회자되죠.

 

 

 

 

 

8. 2000시즌 페드로 마르티네즈

 

217이닝 284삼진 1.74 방어율

Fwar 9.4 Bwar 11.7 ERA+291 ERA-35

 

- Bwar 11.7은 위의 드와이트 구든의 단일 시즌 이후 가장 높은 기록입니다. 방어율 조정한 두 기록은 20세기 이후 역사상 1위의 시즌입니다. 투수의 전성기를 두 시즌으로 한정하면 1912시즌~1913시즌의 월터존슨과 1999시즌~2000시즌의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천상계로 놓을 것입니다.

 

 

 

 

9. 2001시즌 랜디 존슨

 

249.2이닝 372삼진 2.49 방어율

Fwar 10.4 Bwar 10.1 ERA+188 ERA-55

 

- 페드로의 두 시즌 중 하나만 고른다면 이견이 갈리듯이, 랜디도 오랜 전성기에서 하나만 꼽기에는 고민될 것입니다. 필자는 2001시즌이라고 생각하고 야구 역사에 남을 시즌이라고 보는 편입니다. Bwar과 Fwar 둘 다 10 이상을 달성했고, 372개의 삼진은 역대 3위이며, 9이닝 당 삼진이 13.4개나 되었는데 이는 2019시즌 게릿 콜이 경신하기 전까지 역대 1위였습니다. 2001 포스트시즌에서도 커트 실링과 함께 애리조나의 쌍두마차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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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투수들 중 사이 영, 피트 알렉산더, 레프티 그로브, 샌디 쿠팩스, 밥 펠러의 시즌도 넣을까 말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다만 방어율이 부족하거나 War이 부족하거나 하는 등의 아쉬움이 있던 경우가 많아서 위의 9번의 시즌만 추려봤습니다.

 

- 야구에 만약은 없지만 1994시즌-1995시즌에 파업으로 시즌 단축이 안 되었으면 매덕스의 저 두 시즌, 랜디의 95시즌도 넣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if도 듭니다.

 

- 현역 선수들 중, 즉 랜디 존슨 이후 최고 시즌은 아무래도 2009시즌의 잭 그레인키나 2018시즌의 제이콥 디그롬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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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의 천적, 영광과 비운의 명장 가르친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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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친링(Gartrinring, ???~699).

 

  토번의 장군이자 재상으로서, 7세기 최강국이었던 당나라를 상대로 연이어 대승을 거둔 인물입니다. 7세기 당나라는 사방으로 영토를 넓혀가던 시기였습니다.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신라도 복속시려 했고, 돌궐도 수십 년 동안 장악했었죠. 이런 당나라를 상대로 가르친링은 대비천 전투, 승풍령 전투, 인식가 전투, 소라한산 전투에서 역사에 남을 전공을 취합니다.

 

  그는 토번의 명재상 가르통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7세기 중후반, 토번의 국력은 신장하고 있었습니다. 663년, 가르통첸은 토욕혼이라는 유목민족을 멸망시킵니다. 4년 뒤 가르통첸이 사망하고 그가 갖고 있던 재상직은 첫째 아들 가르친네에게, 군권은 둘째 아들 가르친링에게 주어집니다. 군권을 잡고 가르친링은 강주를 침범하는 등 당나라를 상대로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도저히 토번을 용납할 수 없었던 당고종은 설인귀와 곽대봉에게 토번을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대비천 전투(Dafeichuan Battle, 670년)

  구당서에 따르면 설인귀는 토번 원정이 멀고 땅이 험해서 수레가 오고가기 어렵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빠르게 정예군으로 속전속결로 끝내야한다고 결정했습니다. 곽대봉에게 후방의 군수물자를 맡기고 그 중 수레와 말에 실은 물자는 후방의 요충지에 보관하라고 알렸습니다. 그는 직접 선봉을 이끌었으며, 하구에서 토번군을 격퇴하고 양 1만마리를 전리품으로 취했습니다. 그는 기세를 몰아 오해성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곽대봉은 설인귀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자신의 병력을 이끌 때 수레와 말에 군수품을 실어서 간 것이지요. 그는 신속하게 설인귀와 합류하지도 못했고, 토번군의 기습에 참패하고 포로로 잡힙니다. 군수물자도 빼앗긴 상황에서 설인귀는 대비천까지 후퇴하지만 가르친링에게 괴멸당하고 역시 포로로 잡힙니다.

 

  심지어 당군의 초반의 승리는 가르친링의 계획대로였습니다. 가르친링은 곽대봉의 당군이 설인귀의 당군과는 달리 진군이 느리게 진군하는 정보를 획득합니다. 그는 동생 가르찬파에게 병력과 양들을 내어준 뒤 당군 선봉대와 만나면 싸우는 척만 하고 퇴각하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설인귀가 토번군 잔당과의 승리에 고무되어 앞으로 나아갈 동안, 가르친링은 동생과 함께 곽대봉을 격파하고 있었습니다. 오해성 앞에 있던 설인귀는 그제서야 다급히 기병대를 보내지만 가르친링이 계획한 매복에 괴멸당했고, 가르친링은 후퇴하던 설인귀의 남은 병력도 섬멸했습니다.

 

  그 해 가르친링은 당나라가 서역에 설치한 안서사진(귀자도독부, 비사도독부, 소륵도독부, 언기도독) 영토를 빼앗았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전투에서 동원된 당나라의 병력은 최소 10만 대군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승풍령 전투(678년)

  당고종은 678년 이경현, 유심례 등에게 18만 대군을 주어서 토번을 침공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선봉을 이룬 유심례의 당군은 대비천 전투와 비슷하게 기세를 타서 청해호(지도의 칭하의호)에 이르렀습니다. 가르친링은 직접 대군을 이끌고 청해호에서 유심례를 죽이고 당군 수만 명을 괴멸시킵니다.

 

  가르친링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승풍령으로 퇴각하던 이경현의 본대를 쫓았습니다. 그는 대군을 이끌고 고지대에서 당군을 기습하여 포위했으며, 선봉장 발지설에게 기병 부대를 주어서 포위섬멸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 때 백제 출신의 당나라 부하 장수 흑치상지가 결사대 500명을 이끌고 발지설의 토번군 부대를 습격했습니다. 포위망은 뚫렸고, 가르친링은 이경현과 당나라 몇몇 장수들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승풍령에서의 대승으로 당나라는 재차 많은 병력을 잃었고, 청해성 일대를 토번의 영토로 포함시켰습니다. 그는 2년 뒤 사천성 지역의 안융성을 점령했습니다. 계속 총력적인 원정을 벌이지 않는 대신 당나라 서쪽 지역을 계속 약탈했습니다. 685년 그의 형이자 토번의 재상인 가르친네가 죽고 군권과 함께 재상을 겸하게 되었습니다.

 

 

  인식가 전투(689년)

   영문위키에 따르면 이 전투는 지금의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인식쿨 호수와 가까운 강에서 벌어졌다고 합니다.(위 지도의 회색으로 체크된 부분의 호수가 인식쿨 호수입니다.) 689년, 측천무후는 위대가와 염온고에게 10만 대군을 이끌고 토번을 정복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가르친링이 이끄는 토번군은 강을 사이에 두고 당군과 대치했습니다.

 

  겨울인 시기라 매서운 추위가 창궐했습니다. 사나운 바람과 함께 폭설이 내려서 당군은 시야 확보가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가르친링은 강이 꽁꽁 얼고 폭설이 내리자 당군을 기습했습니다. 당군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지리멸렬했습니다. 대병력을 잃고 남는 당군도 퇴각하는 도중 상당수가 추위에 얼어죽었습니다. 측천무후는 패전에 화가 나서 위대가를 유배시키고 염온고를 참수했습니다.

 

  하지만 692년 측천무후는 왕효걸에게 30만 대군을 주어서 총력전으로 안서사진을 회복하게끔 합니다. 가르친링의 동생인 가르다고리가 15만 대군을 이끌고 안서사진을 지키고 있었지만 왕효걸에게 참패를 당해서 안서사진을 내주게 됩니다. 동맹이었던 서돌궐의 장수 아사나뇌자가 10만 대군으로 구원하러 오지만 태반이 소멸당하고 말았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가르친링은 당나라를 상대로 강경하게 나섰습니다. 695년 당나라의 임조를 공격해서 약탈하자, 측천무후는 임사덕에게 10만 대군을 더 주어서 기존의 왕효걸의 대군에게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토번 내부에서는 당나라와 강화하자는 신하들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소라한산 전투(696년)

  소라한산 전투는 현재 중국의 우웨이 시 주위의 산맥에서 벌어졌습니다. 최소 10만, 최대 40만 대군이라는 압도적인 전력의 당군에 비해 전력이 한참 부족하고 심지어 연패하기까지 한 자국의 군대로 맞서기 전 가르친링은 이런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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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pa'o gTsug-lag phreng-ba 연대기, Lhobrag판, 목판본에 기록된 가르친링의 시 -

많은 작은 새가 한 마리 매에 의해 살해되며

많은 작은 물고기가 한 마리의 수달피에 의해 죽임을 당하네

크게 자란 뿔에도 불구하고

수사슴은 짦은 뿔을 가진 야크를 당하지 못하네

백년된 소나무도 하나의 도끼에 베어지며

강은 작은 배로 건널 수 있다네

평야전체에서 자라나는 대맥과 쌀은 하나의 물방아로 빻아지고

뭇별들은 하나의 태양에 의해 빛을 잃네

계곡 밑에서 발화된 불이 산을 태우고

한 샘물의 물이 산과 평원의 모든 나무를 운반하네

하나의 돌이 평원에 있는 단단한 돌을 흙으로 만들고

풀전체는 버려진 철조각 보다 빨리 썩네

솥에 가득 찬 물도 소금을 넣으면 짜게 되고

무수한 풀도 낫 하나로 베여지며

가느다란 화살로 여러마리 야크가 죽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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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곱씹어보면 적은 수의 군대일지언정 당나라의 몇 배의 대병력을 반드시 격퇴하겠다는 의지를 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696년 3월, 산악지대에서 양쪽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전투 끝에 가르친링은 또다시 적들의 공세를 막아내고 당나라에게 참혹한 패배를 안겨주었습니다.

 

  아쉽게도 전투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아서 가르친링이 어떻게 역전시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기적적인 전공을 세웠습니다. 이는 해하 전투에서 항우가 승리한 것과 같은,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 바르카가 승리한 것과 비견될 믿기지 않는 역사적 승리였습니다. 당군의 총사령관 왕효걸은 평민으로 강등되었습니다.

  한스러운 몰락

  소라한산 전투 이후 가르친링은 측천무후에게 안서사진에서의 철수와 서돌궐 지역의 영토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측천무후는 가르친링의 정권이 사상누각이라는 걸 알고 거절했다고 합니다. 전투 이전 토번의 많은 귀족들이 가르친링을 눈엣가시로 여겼고, 토번의 군주 치둑송첸은 왕권 강화를 위해 많은 권력을 차지한 가르 가문의 시대를 끝장냈습니다.

 

  699년, 가르친링이 토번 병력과 함께 멀리 있을 때 치둑송첸은 사냥을 이유로 병사를 모아 가르 일족과 가르친링을 따르던 부하들 2천 명을 몰살시키고, 가르친링에게 수도 라싸로 오라고 압박합니다. 가르친링은 왕명을 거부하고 남은 가신들과 부하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지만, 명분이 없어서 대다수 군사들이 가르친링의 곁을 떠나버립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가르친링은 백여 명의 부하들과 함께 자살을 선택합니다. 그렇게 가르친링은 죽고, 그의 동생과 아들은 당나라로 귀순합니다.

 

 

  가르친링에 대해

  가르친링의 대표적인 전투들은 모두 방어전이었지만, 그는 소규모의 선제공격을 계속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수비에 빛나면서도 점진적으로 토번의 영토를 넓힌 공수겸장의 명장이었습니다. 당나라와의 국경지대를 야금야금 빼앗고 약탈함으로써 참지 못한 대규모 정벌군을 파견할 때를 기다렸습니다. 당나라의 대군이 올 때면그도 대군으로 상대했습니다. 각개격파로 승리했고, 계절을 이용해 기습으로 승리했으며, 마지막에는 초대형 회전에도 승리했습니다.

 

  토번의 위세는 8세기까지 이어졌습니다. 승풍령 전투 이후 신당서 토번열전에는 토번의 영향력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당시 토번(吐蕃)은 양동(羊同), 당항(党項) 및 여러 강족(羌族)의 땅을 모두 점령했으니, 동쪽으로는 양주(涼州), 송주(松州), 무주(茂州), 휴주(巂州) 등지와 서로 접했고, 남쪽으로는 파라문(婆羅門, 인도)에 이르렀으며, 서쪽으로 또한 구자(龜茲), 소륵(疏勒) 등 4개의 진(鎭)을 점령했고, 북쪽으로 돌궐(突厥)과 맞닿아, 땅이 만여 리에 이르니, 한(漢), 위(魏) 이래 서융(西戎)의 번성함이 이와 같은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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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시 인창동 삼보1공원에 앉으면서 틈틈이 찍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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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번에 헌혈이 끝나고 잠깐 구리역 주변의 인창동을 돌아다녔는데, 삼보1공원에서 찍은 사진들을 올려봅니다. 날씨도 꽤 쌀쌀했고 눈이 내렸지만 휴식을 취하기에는 적합했습니다. 구리시 인창동 삼보아파트 옆에 있는 공원이라 주변 길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습니다. 사방이 아파트 단지에 초등학교도 두 곳 있고, 구리역과도 가까운 곳이라는 점도 실감했습니다.

 

  예전에 일터가 인창동인 적이 있어서 삼보1공원 주변 길을 많이 돌아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어렸을 때도 구리시에 살았지만 주로 수택동에 살았는데 지금은 2주 마다 한 번 씩 헌혈하러 가거나 인창도서관에 가서 필요한 책을 대출하는 걸 빼면 인창동에 자주 가지 않는 편입니다. 코로나 종식이 아직 멀어서 거주지보다 다소 멀리 떨어진 장소에는 발길을 주지 않는 것도 크고요. 아담한 공원이지만 시설이 문제 없이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저만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티스토리의 지도를 첨부할 때 크롬으로는 안 되었는데 파이어폭스에서는 가능하네요. 앞으로 지도를 첨부하는 글이 있다면 파이어폭스에서 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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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축구, NFL] NFC와 AFC의 왕좌와 슈퍼볼 55에 가는 팀은?(마홈스 vs 알렌 / 로저스 vs 브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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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세인츠 vs 버커니어스 경기를 끝으로 와일드카드에 이어 디비저널 라운드까지 모두 끝났습니다. AFC에서는 1시드 캔자스시티 치프스와 2시드 버팔로 빌스가 격돌하고, NFC에서는 1시드 그린베이 패커스와 5시드 템파베이 버커니어스가 격돌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1시드 팀이 홈 어드밴티지를 가져갑니다. 와일드카드에서는 시호크스 vs 램스, 스틸러스 vs 브라운스 등 낮은 시드가 높은 시드를 이기는 언더독의 반란이 많이 일어났지만 디비저널 라운드에서는 1시드와 2시드인 4팀 중 3팀 챔피언십 경기에 올라갔습니다.

 

  538 사이트의 플레이오프 예측은 패커스와 치프스의 결승전, 그리고 패커스의 우승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네요. 필자 역시도 치프스와 빌스는 박빙이라고 보고, 패커스와 버커니어스는 패커스의 진출이 많이 유력하다고 봅니다. 지난 치프스 경기에서 마홈스가 3쿼터에 부상으로 나갔는데 과연 빌스 전에서 마홈스의 컨디션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과연 버커니어스 선수들이 램보 필드(패커스 홈 구장)의 추운 날씨에서 선전할지도 관심사입니다. 세인츠 전에서는 버커니어스 수비진이 잘해줬고 브래디와 그롱카우스키는 패츠에서 추운 날씨에 단련되어 있기도 해서 확실한 예측을 내리기 어렵네요.

 

 

  4개 팀들 모두 슈퍼볼 우승이 간절하고 NFL 역사의 큰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치프스가 우승하면 새로운 NFL의 왕조 탄생과 마홈스가 GOAT로 가는 길이 깔리게 되고, 빌스가 우승하면 90년대 초반에 있었던 통한의 4연속 준우승을 극복하고 감동적인 첫 우승을 달성하게 됩니다. 패커스가 우승하면 10년 만의 우승이며 로저스가 MVP와 슈퍼볼 트로피를 동시에 들어올리는 대업을 달성하고, 버커니어스가 우승하면 12시즌 동안 플레이오프를 못간 팀이 한 순간에 우승을 차지하며 브래디는 7번째 반지를 끼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톰 브래디 이외의 애런 로저스, 패트릭 마홈스, 조시 알렌 이렇게 3명의 쿼터백은 이번 시즌 All-Pro 팀 퍼스트 팀, 세컨드 팀에 들어갔습니다. 훌륭한 정규시즌 성적에 이어 플레이오프에서 맹활약해 팀에 우승을 안겨주는 쿼터백이 재차 나올 가능성이 큰 것이죠.

 

  슈퍼볼 55는 버커니어스 홈 구장인 레이먼드 제임스 스타디움에서 개최됩니다. 만약 버커니어스가 패커스를 이겨낸다면 슈퍼볼을 사실상 홈 어드밴티지를 받고 치를 수 있습니다. 우선 대진이 어떻게 되든 AFC는 젊음의 쿼터백이 올라오고 NFC는 연륜의 쿼터백이 올라오게 되는데 진짜 기대됩니다.

 

 

 

 

  여담이지만 이번에 세인츠가 탈락한 건 마음이 아프네요. 다음 시즌의 샐러리 캡 운용에서 -9천만 달러 이상을 안고 시작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러면 전력이 약화될 게 뻔하죠. 재작년 램스에게 오심으로 패배한 것도 천추의 한으로 남을 것 같고요. 드류 브리스도 지난 경기가 마지막일 가능성이 높은데 아쉽네요. 누적으로는 손꼽힐 쿼터백이 MVP를 한 번도 수상하지 못하고 우승도 한 번 밖에 못하고 떠나게 되는 걸 보니 허망합니다. 그것도 하필 지구 내 경쟁팀인 버커니어스에게 떨어지니 현지 세인츠 팬들의 속상함이 클 것 같네요. 정규시즌에서는 2번 다 이긴 팀이었는데 플레이오프에서는 다르니 확실히 NFL의 변수는 예측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Ou2ikHCNKg

 

  경기가 끝나고 브래디와 브리스는 사복 차림으로 경기장에서 인사를 나눴네요. 다시 보니 슈퍼볼 53에서 둘이 맞붙지 못한 게 아쉽기도 하고, 브리스 가족들과 함께하는 브래디의 모습이 서로 짠하고 감동적입니다. 스포츠 팬으로서 40대 노장 쿼터백인 두 전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NFC Championship, 패커스 vs 버커니어스: 1월 25일 월요일 오전 5:05

 

AFC Championship, 치프스 vs 빌스 : 1월 25일 월요일 오전 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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