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시청과 교문도서관 사이에 있는 공원으로 역시 주변에 주거단지가 많습니다. 제가 갔을 때 예전에 눈이 많이 내렸지만 날씨가 따뜻해서 눈이 녹아내리던 시기였네요. 놀이터와 방범대 건물, 경로당과 비를 피할 수 있는 쉼터가 있는 작은 공원입니다. 개인적으로 구리시청 가는 길에 가끔씩 보는 공원이기도 합니다.
*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단일 시즌 최고점을 찍었던 선발 투수들을 비교해보겠습니다. 범위는 아메리칸리그가 창설된 1901시즌부터 지금까지입니다. 투수로서의 가치는 선발 투수가 마무리 투수보다 월등하다고 생각해서 선발 투수만 놓고 비교했습니다.
* 투수로서 Bwar과 Fwar을 둘 다 고려했습니다. 선수의 전체 커리어로는 Bwar을 더 중시하지만 단일 시즌 비교는 반반이라고 봅니다.
* 오랜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삼진과 이닝, War 등 시대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단일 시즌 기록에서 그 시대에 다른 선수들을 얼마나 압도했는 가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또 전인미답의 대기록을 달성했다고 여긴 경우라면 개인적인 보너스 점수를 주기도 했습니다.
* 작성한 기록은 이닝, 삼진, 방어율, Fwar, Bwar, ERA+(Bwar, 레퍼런스 쪽 조정방어율). ERA-(팬그래프 쪽 방어율 보정)를 썼습니다. 해당 시즌 리그 1위 기록에는굵은 글씨를 표시했고, 전체 1위 기록에는기울인 글씨를 추가했고, 만약 역대 1위 기록(1901시즌 부터 지금까지)이라면빨간색 글씨를 더 붙였습니다.
1. 1908시즌 크리스티 매튜슨
390.2이닝 259삼진 1.43 방어율
Fwar 10.8 Bwar 11.7ERA+169 ERA-61
- 역대 메이저리그 시즌 중역대 1위의 FIP 시즌(수비 무관 투구 기록, 1.29). 단일 시즌 Fwar 역대 4위로 1960년대까지 최고의 Fwar 기록.
2. 1912시즌 월터 존슨
369이닝303삼진 1.39 방어율
Fwar 9.3 Bwar 13.2 ERA+243 ERA-42
- 데드볼 시대의 300삼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즌. 이 시즌의 월터 존슨 이후 300삼진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투수는 1946시즌 밥 펠러로, 자그마치 34시즌이 걸렸습니다. 단일 시즌 Bwar 2위의 기록.
3. 1913시즌 월터 존슨
346이닝 243삼진 1.14 방어율
Fwar 8.5Bwar 15.1ERA+259 ERA-39
- 단일 시즌Bwar 역대 1위의 대업을 달성한 역대 최고 투수의 시즌입니다. 모든 기록에서 전체 1위, 심지어 다승, 승률, 완투승, 완봉승 횟수도 전체 1위였습니다. ERA-는 역대 6위, ERA+는 역대 5위(단축 시즌이었던 2020시즌 제외), 단순 방어율은 역대 5위로 역사에 남을 궁극의 기록.
4. 1968시즌 밥 깁슨
304.2이닝268삼진1.12 방어율
Fwar 8.6 Bwar 11.2 ERA+258 ERA-38
- 역대 방어율 3위, ERA+ 역대 6위(단축 시즌이었던 2020시즌 제외)의 대기록이 나온 시즌입니다. 역대 방어율 1위, 2위의 선수들이 War이나 이닝이 부족해서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그에 비해 깁슨의 이 시즌은 독보적이었습니다. 투고타저시대인 걸 감안하더라고1.12의 방어율은 불멸의 기록입니다. 13번의 완봉승도 기록했는데 이는 역대 3위로 라이브볼 시대인 1920년대 이후부터는 역대 1위입니다.
1968시즌은 메이저리그 역사를 가르는 시즌입니다. 투고타저를 완화하기 위해 다음 시즌부터 마운드의 높이가 15인치에서 10인치로 조정되었고, 아메리칸리그에 지명타자제도가 도입되었죠.
5. 1972시즌 스티브 칼튼
346.1이닝 310삼진 1.97 방어율
Fwar 11.1 Bwar 12.1 ERA+182ERA-80
- Bwar 역대 5위(라이브볼 시대로 한정하면 역대 2위), Fwar 역대 2위. 칼튼은 이 시즌에서 최약체였던 필라델피아 필리스 팀의 총 승수의 절반 가까이(59승 중 27승)를 맡았습니다. 지금은 볼 수 없고, 역대로도 거의뽑기 힘든 야구에서의 '원맨캐리'라면 칼튼의 이 시즌을 우선적으로 뽑고 싶습니다. Bwar과 Fwar을 모두 11 이상 달성한 것은 오직 칼튼 뿐입니다.
6. 1985시즌 드와이트 구든
276.2이닝268삼진 1.53 방어율
Fwar 8.9 Bwar 12.2 ERA+229 ERA-44
-라이브볼 시대 Bwar 역대 1위, 역대 메이저리그 선수들 중 2년차 선수가 이렇게 잘한 경우는 거의 보기 힘들 것입니다. 앞에서 1969시즌부터 마운드 높이가 낮아졌다고 말씀드렸는데, 구든의1.53 방어율은 50년 넘게 깨지지 않았습니다. 비율 스탯과 누적 스탯 모두 완벽했던 최고의 시즌이었습니다. 큰 의미는 없지만, 구든이 마약을 멀리하고 자기관리에 철저했다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아직도 남습니다.
- Bwar 11.7은 위의 드와이트 구든의 단일 시즌 이후 가장 높은 기록입니다. 방어율 조정한 두 기록은 20세기 이후 역사상 1위의 시즌입니다. 투수의 전성기를 두 시즌으로 한정하면 1912시즌~1913시즌의 월터존슨과 1999시즌~2000시즌의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천상계로 놓을 것입니다.
9. 2001시즌 랜디 존슨
249.2이닝372삼진 2.49 방어율
Fwar 10.4 Bwar 10.1 ERA+188 ERA-55
- 페드로의 두 시즌 중 하나만 고른다면 이견이 갈리듯이, 랜디도 오랜 전성기에서 하나만 꼽기에는 고민될 것입니다. 필자는 2001시즌이라고 생각하고 야구 역사에 남을 시즌이라고 보는 편입니다. Bwar과 Fwar 둘 다 10 이상을 달성했고, 372개의 삼진은 역대 3위이며, 9이닝 당 삼진이 13.4개나 되었는데 이는 2019시즌 게릿 콜이 경신하기 전까지 역대 1위였습니다. 2001 포스트시즌에서도 커트 실링과 함께 애리조나의 쌍두마차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토번의 장군이자 재상으로서, 7세기 최강국이었던 당나라를 상대로 연이어 대승을 거둔 인물입니다. 7세기 당나라는 사방으로 영토를 넓혀가던 시기였습니다.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신라도 복속시려 했고, 돌궐도 수십 년 동안 장악했었죠. 이런 당나라를 상대로 가르친링은 대비천 전투, 승풍령 전투, 인식가 전투, 소라한산 전투에서 역사에 남을 전공을 취합니다.
그는 토번의 명재상 가르통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7세기 중후반, 토번의 국력은 신장하고 있었습니다. 663년, 가르통첸은 토욕혼이라는 유목민족을 멸망시킵니다. 4년 뒤 가르통첸이 사망하고 그가 갖고 있던 재상직은 첫째 아들 가르친네에게, 군권은 둘째 아들 가르친링에게 주어집니다. 군권을 잡고 가르친링은 강주를 침범하는 등 당나라를 상대로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도저히 토번을 용납할 수 없었던 당고종은 설인귀와 곽대봉에게 토번을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대비천 전투(Dafeichuan Battle, 670년)
구당서에 따르면 설인귀는 토번 원정이 멀고 땅이 험해서 수레가 오고가기 어렵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빠르게 정예군으로 속전속결로 끝내야한다고 결정했습니다. 곽대봉에게 후방의 군수물자를 맡기고 그 중 수레와 말에 실은 물자는 후방의 요충지에 보관하라고 알렸습니다. 그는 직접 선봉을 이끌었으며, 하구에서 토번군을 격퇴하고 양 1만마리를 전리품으로 취했습니다. 그는 기세를 몰아 오해성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곽대봉은 설인귀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자신의 병력을 이끌 때 수레와 말에 군수품을 실어서 간 것이지요. 그는 신속하게 설인귀와 합류하지도 못했고, 토번군의 기습에 참패하고 포로로 잡힙니다. 군수물자도 빼앗긴 상황에서 설인귀는 대비천까지 후퇴하지만 가르친링에게 괴멸당하고 역시 포로로 잡힙니다.
심지어 당군의 초반의 승리는 가르친링의 계획대로였습니다. 가르친링은 곽대봉의 당군이 설인귀의 당군과는 달리 진군이 느리게 진군하는 정보를 획득합니다. 그는 동생 가르찬파에게 병력과 양들을 내어준 뒤 당군 선봉대와 만나면 싸우는 척만 하고 퇴각하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설인귀가 토번군 잔당과의 승리에 고무되어 앞으로 나아갈 동안, 가르친링은 동생과 함께 곽대봉을 격파하고 있었습니다. 오해성 앞에 있던 설인귀는 그제서야 다급히 기병대를 보내지만 가르친링이 계획한 매복에 괴멸당했고, 가르친링은 후퇴하던 설인귀의 남은 병력도 섬멸했습니다.
그 해 가르친링은 당나라가 서역에 설치한 안서사진(귀자도독부, 비사도독부, 소륵도독부, 언기도독) 영토를 빼앗았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전투에서 동원된 당나라의 병력은 최소 10만 대군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승풍령 전투(678년)
당고종은 678년 이경현, 유심례 등에게 18만 대군을 주어서 토번을 침공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선봉을 이룬 유심례의 당군은 대비천 전투와 비슷하게 기세를 타서 청해호(지도의 칭하의호)에 이르렀습니다. 가르친링은 직접 대군을 이끌고 청해호에서 유심례를 죽이고 당군 수만 명을 괴멸시킵니다.
가르친링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승풍령으로 퇴각하던 이경현의 본대를 쫓았습니다. 그는 대군을 이끌고 고지대에서 당군을 기습하여 포위했으며, 선봉장 발지설에게 기병 부대를 주어서 포위섬멸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 때 백제 출신의 당나라 부하 장수 흑치상지가 결사대 500명을 이끌고 발지설의 토번군 부대를 습격했습니다. 포위망은 뚫렸고, 가르친링은 이경현과 당나라 몇몇 장수들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승풍령에서의 대승으로 당나라는 재차 많은 병력을 잃었고, 청해성 일대를 토번의 영토로 포함시켰습니다. 그는 2년 뒤 사천성 지역의 안융성을 점령했습니다. 계속 총력적인 원정을 벌이지 않는 대신 당나라 서쪽 지역을 계속 약탈했습니다. 685년 그의 형이자 토번의 재상인 가르친네가 죽고 군권과 함께 재상을 겸하게 되었습니다.
인식가 전투(689년)
영문위키에 따르면 이 전투는 지금의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인식쿨 호수와 가까운 강에서 벌어졌다고 합니다.(위 지도의 회색으로 체크된 부분의 호수가 인식쿨 호수입니다.) 689년, 측천무후는 위대가와 염온고에게 10만 대군을 이끌고 토번을 정복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가르친링이 이끄는 토번군은 강을 사이에 두고 당군과 대치했습니다.
겨울인 시기라 매서운 추위가 창궐했습니다. 사나운 바람과 함께 폭설이 내려서 당군은 시야 확보가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가르친링은 강이 꽁꽁 얼고 폭설이 내리자 당군을 기습했습니다. 당군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지리멸렬했습니다. 대병력을 잃고 남는 당군도 퇴각하는 도중 상당수가 추위에 얼어죽었습니다. 측천무후는 패전에 화가 나서 위대가를 유배시키고 염온고를 참수했습니다.
하지만 692년 측천무후는 왕효걸에게 30만 대군을 주어서 총력전으로 안서사진을 회복하게끔 합니다. 가르친링의 동생인 가르다고리가 15만 대군을 이끌고 안서사진을 지키고 있었지만 왕효걸에게 참패를 당해서 안서사진을 내주게 됩니다. 동맹이었던 서돌궐의 장수 아사나뇌자가 10만 대군으로 구원하러 오지만 태반이 소멸당하고 말았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가르친링은 당나라를 상대로 강경하게 나섰습니다. 695년 당나라의 임조를 공격해서 약탈하자, 측천무후는 임사덕에게 10만 대군을 더 주어서 기존의 왕효걸의 대군에게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토번 내부에서는 당나라와 강화하자는 신하들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소라한산 전투(696년)
소라한산 전투는 현재 중국의 우웨이 시 주위의 산맥에서 벌어졌습니다. 최소 10만, 최대 40만 대군이라는 압도적인 전력의 당군에 비해 전력이 한참 부족하고 심지어 연패하기까지 한 자국의 군대로 맞서기 전 가르친링은 이런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시를 곱씹어보면 적은 수의 군대일지언정 당나라의 몇 배의 대병력을 반드시 격퇴하겠다는 의지를 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696년 3월, 산악지대에서 양쪽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전투 끝에 가르친링은 또다시 적들의 공세를 막아내고 당나라에게 참혹한 패배를 안겨주었습니다.
아쉽게도 전투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아서 가르친링이 어떻게 역전시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기적적인 전공을 세웠습니다. 이는 해하 전투에서 항우가 승리한 것과 같은,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 바르카가 승리한 것과 비견될 믿기지 않는 역사적 승리였습니다. 당군의 총사령관 왕효걸은 평민으로 강등되었습니다.
한스러운 몰락
소라한산 전투 이후 가르친링은 측천무후에게 안서사진에서의 철수와 서돌궐 지역의 영토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측천무후는 가르친링의 정권이 사상누각이라는 걸 알고 거절했다고 합니다. 전투 이전 토번의 많은 귀족들이 가르친링을 눈엣가시로 여겼고, 토번의 군주 치둑송첸은 왕권 강화를 위해 많은 권력을 차지한 가르 가문의 시대를 끝장냈습니다.
699년, 가르친링이 토번 병력과 함께 멀리 있을 때 치둑송첸은 사냥을 이유로 병사를 모아 가르 일족과 가르친링을 따르던 부하들 2천 명을 몰살시키고, 가르친링에게 수도 라싸로 오라고 압박합니다. 가르친링은 왕명을 거부하고 남은 가신들과 부하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지만, 명분이 없어서 대다수 군사들이 가르친링의 곁을 떠나버립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가르친링은 백여 명의 부하들과 함께 자살을 선택합니다. 그렇게 가르친링은 죽고, 그의 동생과 아들은 당나라로 귀순합니다.
가르친링에 대해
가르친링의 대표적인 전투들은 모두 방어전이었지만, 그는 소규모의 선제공격을 계속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수비에 빛나면서도 점진적으로 토번의 영토를 넓힌 공수겸장의 명장이었습니다. 당나라와의 국경지대를 야금야금 빼앗고 약탈함으로써 참지 못한 대규모 정벌군을 파견할 때를 기다렸습니다. 당나라의 대군이 올 때면그도 대군으로 상대했습니다. 각개격파로 승리했고, 계절을 이용해 기습으로 승리했으며, 마지막에는 초대형 회전에도 승리했습니다.
토번의 위세는 8세기까지 이어졌습니다. 승풍령 전투 이후 신당서 토번열전에는 토번의 영향력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당시 토번(吐蕃)은 양동(羊同), 당항(党項) 및 여러 강족(羌族)의 땅을 모두 점령했으니, 동쪽으로는 양주(涼州), 송주(松州), 무주(茂州), 휴주(巂州) 등지와 서로 접했고, 남쪽으로는 파라문(婆羅門, 인도)에 이르렀으며, 서쪽으로 또한 구자(龜茲), 소륵(疏勒) 등 4개의 진(鎭)을 점령했고, 북쪽으로 돌궐(突厥)과 맞닿아, 땅이 만여 리에 이르니, 한(漢), 위(魏) 이래 서융(西戎)의 번성함이 이와 같은 적이 없었다.'
지난 번에 헌혈이 끝나고 잠깐 구리역 주변의 인창동을 돌아다녔는데, 삼보1공원에서 찍은 사진들을 올려봅니다. 날씨도 꽤 쌀쌀했고 눈이 내렸지만 휴식을 취하기에는 적합했습니다. 구리시 인창동 삼보아파트 옆에 있는 공원이라 주변 길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습니다. 사방이 아파트 단지에 초등학교도 두 곳 있고, 구리역과도 가까운 곳이라는 점도 실감했습니다.
예전에 일터가 인창동인 적이 있어서 삼보1공원 주변 길을 많이 돌아다녔던 기억이 나네요.어렸을 때도 구리시에 살았지만 주로 수택동에 살았는데 지금은 2주 마다 한 번 씩 헌혈하러 가거나 인창도서관에 가서 필요한 책을 대출하는 걸 빼면 인창동에 자주 가지 않는 편입니다. 코로나 종식이 아직 멀어서 거주지보다 다소 멀리 떨어진 장소에는 발길을 주지 않는 것도 크고요. 아담한 공원이지만 시설이 문제 없이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저만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티스토리의 지도를 첨부할 때 크롬으로는 안 되었는데 파이어폭스에서는 가능하네요. 앞으로 지도를 첨부하는 글이 있다면 파이어폭스에서 써야겠습니다.
오늘 세인츠 vs버커니어스경기를 끝으로 와일드카드에 이어 디비저널 라운드까지 모두 끝났습니다. AFC에서는1시드 캔자스시티 치프스와 2시드 버팔로 빌스가 격돌하고, NFC에서는1시드 그린베이 패커스와 5시드 템파베이 버커니어스가 격돌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1시드 팀이 홈 어드밴티지를 가져갑니다. 와일드카드에서는 시호크스 vs 램스, 스틸러스 vs 브라운스 등 낮은 시드가 높은 시드를 이기는 언더독의 반란이 많이 일어났지만 디비저널 라운드에서는 1시드와 2시드인 4팀 중 3팀 챔피언십 경기에 올라갔습니다.
538 사이트의 플레이오프 예측은 패커스와 치프스의 결승전, 그리고 패커스의 우승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네요. 필자 역시도 치프스와 빌스는 박빙이라고 보고, 패커스와 버커니어스는 패커스의 진출이 많이 유력하다고 봅니다. 지난 치프스 경기에서 마홈스가 3쿼터에 부상으로 나갔는데 과연 빌스 전에서 마홈스의 컨디션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과연 버커니어스 선수들이 램보 필드(패커스 홈 구장)의 추운 날씨에서 선전할지도 관심사입니다. 세인츠 전에서는 버커니어스 수비진이 잘해줬고 브래디와 그롱카우스키는 패츠에서 추운 날씨에 단련되어 있기도 해서 확실한 예측을 내리기 어렵네요.
4개 팀들 모두 슈퍼볼 우승이 간절하고 NFL 역사의 큰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치프스가 우승하면 새로운 NFL의 왕조 탄생과 마홈스가 GOAT로 가는 길이 깔리게 되고, 빌스가 우승하면 90년대 초반에 있었던 통한의 4연속 준우승을 극복하고 감동적인 첫 우승을 달성하게 됩니다. 패커스가 우승하면 10년 만의 우승이며 로저스가 MVP와 슈퍼볼 트로피를 동시에 들어올리는 대업을 달성하고, 버커니어스가 우승하면 12시즌 동안 플레이오프를 못간 팀이 한 순간에 우승을 차지하며 브래디는 7번째 반지를 끼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톰 브래디 이외의 애런 로저스, 패트릭 마홈스, 조시 알렌 이렇게 3명의 쿼터백은 이번 시즌 All-Pro 팀 퍼스트 팀, 세컨드 팀에 들어갔습니다. 훌륭한 정규시즌 성적에 이어 플레이오프에서 맹활약해 팀에 우승을 안겨주는 쿼터백이 재차 나올 가능성이 큰 것이죠.
슈퍼볼 55는 버커니어스 홈 구장인 레이먼드 제임스 스타디움에서 개최됩니다. 만약 버커니어스가 패커스를 이겨낸다면 슈퍼볼을 사실상 홈 어드밴티지를 받고 치를 수 있습니다. 우선 대진이 어떻게 되든 AFC는 젊음의 쿼터백이 올라오고 NFC는 연륜의 쿼터백이 올라오게 되는데 진짜 기대됩니다.
여담이지만 이번에 세인츠가 탈락한 건 마음이 아프네요. 다음 시즌의 샐러리 캡 운용에서 -9천만 달러 이상을 안고 시작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러면 전력이 약화될 게 뻔하죠. 재작년 램스에게 오심으로 패배한 것도 천추의 한으로 남을 것 같고요. 드류 브리스도 지난 경기가 마지막일 가능성이 높은데 아쉽네요. 누적으로는 손꼽힐 쿼터백이 MVP를 한 번도 수상하지 못하고 우승도 한 번 밖에 못하고 떠나게 되는 걸 보니 허망합니다. 그것도 하필 지구 내 경쟁팀인 버커니어스에게 떨어지니 현지 세인츠 팬들의 속상함이 클 것 같네요. 정규시즌에서는 2번 다 이긴 팀이었는데 플레이오프에서는 다르니 확실히 NFL의 변수는 예측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브래디와 브리스는 사복 차림으로 경기장에서 인사를 나눴네요. 다시 보니 슈퍼볼 53에서 둘이 맞붙지 못한 게 아쉽기도 하고, 브리스 가족들과 함께하는 브래디의 모습이 서로 짠하고 감동적입니다.스포츠 팬으로서40대 노장 쿼터백인 두 전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NFC Championship, 패커스 vs 버커니어스: 1월 25일 월요일 오전 5:05
* 예전 스타판 생각이 나서 최강자 계보를 한 번 써봤습니다. 최강자와 2인자를 같이 작성해봤는데, 확고한 2인자가 딱히 떠오르지 않을 경우에는 그냥 생략했습니다.
* 스타1 공식리그(이하 스타판)는 2012년 티빙 스타리그의 허영무 우승을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 다음 몇개월동안 병행프로리그가 진행되긴 했지만, 이건 큰 의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 드래프트 세대(07시즌 이후 스타판을 장악한 세대) 이전에는 양대 개인리그 이외의 게임큐, 겜tv, itv, 프리미어리그 등 기타 대회가 많았고, 이후에는 그런 기타 대회가 많이 사라지고 프로리그의 비중이 커졌던 세대입니다. 임요환, 홍진호를 보고 프로리그 다승이 부족하다고 폄하해서도 안 되고 김택용, 이제동을 보고 올드 세대들에 비해 다른 대회 우승이 부족하다고 폄하해서도 안 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 과거를 되새겨봐도 역시 스타판은 양대 개인리그의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 '마의 저그'의 이름을 넣을까 고민했는데 취소선으로나마 적긴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06시즌 최강자라고 말할 수는 없어서...
* 연도가 아니라 시즌별로 작성했습니다. 가령 김택용의 첫 MSL 우승은 07년 3월이었지만 06시즌이라고 불렸고 이윤열의 파나소닉 스타리그 우승은 03년에 끝났지만 일반적올 02시즌 우승인 것이죠.
(0. 99시즌 ~ 00시즌 중반 최강자 기욤 패트리)
- 스타판이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있던 시절, 어쩌면 진정한 세계 최강이었던 기욤.
1. 00시즌 후반 ~ 01시즌 최강자 임요환(2인자: 홍진호)
- 대중들에게 각인된 임요환-홍진호 라이벌 관계의 시작.
2. 02시즌 최강자 이윤열(2인자: 홍진호, 조용호)
- 천재테란 이윤열의 그랜드슬램. 그리고 여전히 눈물의 종족 저그.
3. 03시즌 전반 강민 vs 최연성
& 03시즌 중반 ~ 04시즌 전반 최강자 최연성
- 몽상가 강민 등장. 그러나 최연성이라는 압도적인 최강자 앞에서 모두가 무력했다.
4, 04시즌 후반 구도 3신전
- 박태민 vs 이윤열 vs 박성준 1차 삼국지 완성. 이 때 박성준이 우승한 프리미어리그도 인기였다.
5. 05시즌 초중반 구도 춘추전국시대
- 스타판 역사상 최대 혼란기. 누구 한 명 최강자를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춘추전국이자 군웅할거의 시대.
6. 05시즌 후반 구도 최연성 vs 마재윤 vs 박성준
- 제 2차 삼국지와 마재윤MSL 연속 진출의 시작. 그리고 저그로써 최초로 테란을 꺾은 박성준과 다시 최강자로 돌아가려는 최연성의 삼각구도.
7. 06시즌 최강자 마재윤(2인자: 이윤열)
- 스타판의 뜨거운 감자이자 다소 우스운 논쟁이 되었던 마재윤의 본좌론, 그리고 이윤열의 부활.
8. 07시즌 전반 : 김택용(2인자: 송병구)
- 역대 최강 토스의 MSL 3회 연속 진출, 다만 실패로 끝난 그의 본좌로드.
9. 07시즌 중반 ~ 09시즌: 이제동
- 가장 오랫동안 스타판을 지배한 게이머 이제동의 장기집권. 김택용, 송병구, 정명훈, 이영호 모두 그의 기세에 눌렸다.
10. 10시즌 최강자: 이영호(2인자: 이제동)
- 모든 개인리그 결승에 진출한 10이영호의 압도적인 지배. 10시즌 이제동은 딱 한 명을 제외하고 다른 이들과는 격이 다른 비운의 2인자였다.
11. 11시즌 이후 스타판은 망조의 길을 걸었다. 한 시즌에 6개 대회가 열리던 양대 개인리그가 4개 대회로 축소되고 MSL은 2011년에 폐지되었다. 정명훈이 다시 비상했고 이영호가 마지막 MSL 타이틀을 차지. 그리고 허영무의 스타리그 연속 우승.
일주일에 3회 씩 아차산에 등산을 갑니다. 등산을 가면서 중간의 약수터를 지난 뒤, 더 올라가면 구리시와 서울시 광진구 사이의 아차산 둘레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한 바퀴 씩 돌아다니는데 길이 포장되어 있어서 걷기가 편합니다. 등산이나 둘레길, 또는 가벼운 걷기 운동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걸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주변에 나무가 많아서 공기가 맑고 경치가 아름다워서 걷는 느낌이 상쾌합니다. 걸어다니시면 팔각정이나 벤치도 쉽게 찾아보실 수 있어서 중간에 휴식을 취하기에도 적합합니다.
보름 전 쯤 예비군 원격 교육을 수강했는데 늦게나마 원격교육을 들은 후기를 올립니다. 실은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하루에 한 개 씩 올리고 있는데, 기존에 예약 발행한 게 많아서 이 글은 후순위로 밀렸네요. 예비군 원격교육 홈페이지에서 이름과 생년월일과 군번을 입력하고,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항목에 동의한 뒤 로그인했습니다.
로그인 하면 예비군 년차를 알려주고 아직 비이수 상태라고 표시됩니다. 수강할 수 있는 날짜도 나오네요. 평소에 PC 인터넷을 Chrome을 통해서 주로 사용하는 편인데 원격교육 홈페이지의 학습이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크롬에서 가능해서 좋았습니다. 마이 페이지 아래에 있는 나의 강의실로 들어갔습니다.
원격교육은 총 4교시와 마지막 설문조사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1교시 국방 시간, 2교시 예비군 복무, 3교시 핵 및 화생방전 방호, 4교시 응급 처치 순서였고, 마지막에 설문조사에서 몇 항목에 응답하면 수강이 완료됩니다. 총 강의 시간은 2시간으로 공지되었지만 실제로 듣는 시간은 그보다 다소 짧았습니다.
매 교시 마다 퀴즈가 중간에 2문제씩 출제되었습니다. 총 8문제인데 난이도는 낮아서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한 교시 씩 수강한 다음 오른쪽 '수강하기' 버튼을 누르면 다음 교시로 이동해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예비군의 역사와 최신 변화, 군 복무에 관한 정보, 예비군의 규모와 필요성, 각종 강의 내용, 핵과 화생방 대처와 응급 처치 훈련 내용도 있었습니다. 강의 내용이 다채로워서 듣는 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알고 있던 내용이 많았지만 한 번 더 들으니 더욱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강사가 직접 설명해주는 부분도 있고, 예비군 관련 동영상, 군 복무 규율에 관한 그림 등 머릿속에 남는 장면이 한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설문조사는 퀴즈보다도 응답하기 쉬웠고, 원격교육의 전 과정이 끝난 다음에는 위의 스크린샷에 보이는 것처럼 '완료하였습니다'라는 문구를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여덟 개의 퀴즈를 다 맞힌 예비군에게 추첨을 통해 기념품으로 마스크를 보내준다고 해서 연락처와 주소 등을 입력하기도 했었습니다.원격교육 이수증을2월 26일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예비군 홈페이지를 통해 출력이 가능하다는 점도 기억했습니다. 혹시 몰라서 올해 예비군 훈련 때 출력해서 한 장 가져가려고 합니다.
다시 로그인 후 첫 화면으로 건너가면 회원 님은 미이수 상태라는 글이 이수 상태라는 글로 바뀌었다는 게 드러납니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들으니 시간이 빨리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작년 훈련이 원격교육으로 전환된 게 코로나 때문인데 이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네요. 원격교육은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